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요 12:9)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와 그를 본 자들로 인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점점 더
퍼져갔습니다. 때문에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당황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문제의 발단의 되는 예수와 나사로를 죽이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와 그 일을 행한 주님만 죽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드러난 현상만을 보고 그 현상이
생겨나게 된 근본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나사로를 살리신 분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인다고, 나사로를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샘의 물을 퍼낸다고 샘의 근원까지도 다 퍼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매일 밖에 나가 노느라고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밖에 나가지 못하게 집안에 가두어 놓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하루 종일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컴퓨터를 없애 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에 재미를 못 가지는 아이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근본을 보아야 합니다.
어떤 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습니다. 안에 갇힌 아이가 몹시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가 문을 열기 위해서 바로 문 앞에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모든 염려가 사라집니다. 불안과 염려는 ‘믿음 없음’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때로 당시 유대인들처럼,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문제만 보느라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더 멀리 보아야 합니다. 드러난 겉모습이 아니라
숨겨진 근본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돈이 없어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지금 힘들어하는 것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해서입니다.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경제 불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분명한 믿음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다시 살리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분명한 믿음, 바로 그 믿음만이 우리를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 주님을 십자가에서 다시 살리신 그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계심을 분명히 믿고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