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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6 Fri.
ㆍ제 목 :   서양과 일본은 다르다
ㆍ날 짜 :  2006-02-19 Sun.  Prev Next ㆍ조회수 : 3,780 
제목 없음
개신교회가 전래되던 무렵 근대 한국은 민족의식을 새삼 강조하고 또 그 형성을 예민하게 서두르고 있었다. 본디 오랜 세월 단일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가져온 한국이지만 조선에 들어와서는 두 차례의 전란과 더불어 서양 문명국의 위력을 직간접적으로 겪어 오던 터였다. 더욱이 쇄국의 방침을 굳건히 고수하던 그때 민족의식의 강조는 쇄국의 한 방책으로서 채택되고 있었다. 외국은 그것이 서양이든 일본이든 우리 민족이 아닌 바에야 국가와 민족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필시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더구나 불행하게도 지난 100년 동안 반민족적 인상을 굳게 심어 온 가톨릭교회의 역사로 인해 기독교 문명국인 서양은 더욱 의심스러운 대상이었다.

이는 동학(東學)이 처음 예수교를 대했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1893년 3월 16일 예수교에 대한 동학의 실질적인 반발이 가시화되었다. 동학도가 광화문에서 교조 신원을 위한 복합 상소로 호곡하던 때였다. 그때 미국 선교사 기포드(D. L. Gifford)의 학당 문전에 ‘야소교 배척 방문’이 나붙는다. 그리고 얼마 후 4월 초에는 감리교 선교사 존스(G. H. Jones)의 집에 ‘목사 퇴거 방문’이 첨부되었다. “혹세무민(惑世誣民)과 이단성이 가득한 이 종교가 조약 중에도 없는 전교를 함부로 하고 교육을 빙자하여 양가 자제들을 개종시키고 있어 그 비루함이 이에서 다시 없다”고 하면서 기한부 퇴거를 협박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1894년 7월 동학의 거센 움직임이 다시 일어날 때 예수교에 대한 자세에 변화가 나타난다. 이때 동학의 투쟁 목표는 왜의 오랑캐를 진멸하자는 것이었고 따라서 서양 배척의 항의는 빠지고 있었다. 서양과 일본 배척의 주장에서 일본 배척의 주장으로 동학의 투쟁 목표가 전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일본과 서양은 하나가 아닌 둘로, 다른 것으로 경험된 것이다. 그해 12월 동학계에서 발표된 문서에는 도는 다르나 척왜와 척화는 그 뜻이 일반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을 배척하자는 척왜와 외국과의 화약을 배척하자는 척화가 쇄국의 시대에 조선의 일반적 정서였다. 그런데 ‘도는 다르지만’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믿고 있는 종교가 달라도 척왜와 척화에서 하나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교의 척왜성이 그때 이미 눈에 띌 만큼 현저하게 표면화하였던 것이다.

 

Posted by 차동신   200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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