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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 목 :   정하상과 변증문학
ㆍ날 짜 :  2006-04-09 Sun.  Prev Next ㆍ조회수 : 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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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상과 변증문학  
조선에 유입된 가톨릭교회가 체제와의 병존을 전적으로 거절하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훗날의 개신교회보다도 이 방면에서의 노력이 특출하였다고 본다. 예를 들어 정하상(丁夏祥)의 『상재상서』(上宰相書, 1839)와 같은 책은 한국의 개신교회 선교 실현과정에서는 보기 드문 기독교 변증서의 일종인 것이다.

정하상은 황사영의 처남이었는데, 그는 확실히 황사영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친족의 순교를 눈에 보고 자랐다. 변증되지 않은 격렬한 신앙이 가져오는 비극적 결말이 그의 마음에 끼친 영향은 다대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4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선의 가톨릭교회는 교세의 증가와 함께 조직화의 결실을 낳고 있었다. 그가 『상재상서』를 쓰기 얼마 전 가톨릭교회 조선교구가 독립하게 된 것이다.

대개의 변증서가 그러하듯이 정하상의 『상재상서』도 교리 자체보다는 오히려 교리의 체계적 설명과 그에 따른 전파 문제에 더욱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우선 불교를 공격함으로써 조선조의 기독교 이단 시비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리고 기독교가 오래 중국에 퍼져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여 기독교의 진리성을 증명하려 했다. 조선 사회가 정통으로 믿고 기대왔던 중국의 실체와 이단으로 배척했던 불교의 교리를 양 극단에서 함께 동원할 만큼 그의 기독교 변증의 폭은 넓었고 그 방법은 당시 체제의 사상적 핵심에 뚫고 들어갔다.

더 나아가 정하상은 기독교가 현실적이요 ‘이국지원’(理國之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윤리적 현실성이 깊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십계명은 ‘충서효제인의예지’(忠恕孝悌仁義禮智)를 포괄한 지선(至善)의 법도로서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유교의 이념에서 보아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기독교인만이 홀로 임금의 적자(赤子)임을 주장할 정도로 그의 변증은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기독교 변증가들이 그랬듯이 그의 노력은 변증의 대상이었던 조정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실패한다. 겨레의 단심에 충심으로 호소한 기독교인 정하상, 그는 마흔다섯 살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목이 잘려 순교했다. 1839년 기해교난(己亥敎難) 때의 일이다.

 

Posted by 차동신   200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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