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
10:29)
18세기 유럽에 경건주의가 일어나 영국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이 운동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대각성운동으로 교회를 부흥시켰고 나라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이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친첸돌프 백작이었습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백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별로 뜨겁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박물관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그 자리에서 그는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그의 삶은 변했습니다. 모든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백작의 명예를 포기한 채 고향을 떠나서
경건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전도의 순례를 계속했습니다. 그의 경건한 삶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왜 버렸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더 귀하기 때문에 버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것은 모두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이 얻으면
복 받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많이 받으면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왔던 부자 청년은 율법을 모두 지키고 바른 삶을 산다고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있는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와서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갔습니다.
오늘 주님을 위하여, 내 믿음
생활을 위하여 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원하신다면 내게 가장 귀한 것을 버릴 수 있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내게 가장 귀한 것인지 한
번 찾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입니다.
내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버리셨던 주님, 주님을 위하여
내것을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