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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 목 :   애통하는 자의 복
ㆍ날 짜 :  2006-11-23 Thu.  Prev Next ㆍ조회수 : 3,209 
제목 없음
애통하는 자의 복  
ㆍ느헤미야 9:1∼25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느 9:1-2)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역설적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팔복의 두 번째 항목인 ‘애통하는 자의 복’은 우리의 논리와 상식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애통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죄에 대한 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의 역사를 맛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죄에 대한 애통함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서의 기쁨과 위로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깊이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성숙한 자입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거울에 비친 자기 죄를 보고 애통하는 자입니다. 이 애통함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만이 성숙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는 애통함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많은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감옥에 갑니다. 그런데 이들 중 51%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억울하다고 변명합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애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정 이 시대는 정치적인 것부터 개인의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죄의 고백과 애통함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청산되지 않는 죄는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과거 역사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죄를 애통했습니다. 애통함을 통하여 부끄러운 과거를 씻고 새날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물질의 소유만을 복으로 생각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 따라 날마다 죄를 자복하고 애통하는 삶을 삽시다. 그럴 때 주님의 한없는 자비와 용서의 기쁨이 넘쳐 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애통하며 흘린 눈물은 영혼의 진주가 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가슴을 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린 세리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Posted by 차동신   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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