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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6 Fri.
ㆍ제 목 :   고통을 당한 자의 물음
ㆍ날 짜 :  2006-11-03 Fri.  Prev Next ㆍ조회수 : 3,213 
제목 없음
고통을 당한 자의 물음  
•예레미야 애가 4:1∼22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애 4:2)
고난과 고통의 문제는 단답식의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객관식으로 보기가 주어진 문제도 아닙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끊임없이 묻고 답해져 왔던 물음, 그것이 고난과 고통의 문제입니다.

욥기가 들려주는 고난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고난의 문제, 특별히‘선한 사람’과 ‘하나님 백성’에게 일어나는 고통의 문제들은 여전히 쉽지 않은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 줍니다. 분명한 것은 고통에 대해서, 특히나 남의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언약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 버린 주전 587년의 비극은 언약백성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에게 적잖은 의아심을 품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파괴를 묵인하셨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왜 우리 교회에 이런 일이…’독일의 신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그의 저서 『고난』(suffering)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물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것이 누구를 섬기는가 하는 물음이다.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악마를 섬기는가, 살아 있는 자가 되게 하는 원인인가, 도덕적으로 무력한 자가 되게 하는 원인인가?” 즉, 그는 ‘이 비극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묻기보다 ‘이 비극이 어디로 향하는가?’를 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보배로운 정금 같은 자리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져져 깨진 질항아리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린 시온의 아들들. 그들의 비극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고백은 이후 사도 바울의 입술을 빌려 이렇게 바뀝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본디 그들이나 우리나 정금같이 보배로운 까닭은 다만 보배되신 예수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 질그릇에 불과한 우리가 보배로운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고 그분을 모시지 못하면 다시금 던져진 질그릇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깨어 묵상할 일입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저희의 고통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귀기울이게 하옵소서. 아멘.

 

Posted by 차동신   200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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