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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 목 :   교회 활동의 반경 문제
ㆍ날 짜 :  2006-11-26 Sun.  Prev Next ㆍ조회수 : 4,412 
제목 없음
교회 활동의 반경 문제  
선교신학의 양극화로 그 골이 깊어만 가던 1980년대 한국 교회에서 중도와 관용의 정신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았다. 이들 나름의 견해와 원칙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힘주어 기독교의 원리와 원칙을 강조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들은 현실 도피와 세속에로의 동화는 아울러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가치관이 전도(顚倒)된 이 세계의 모순을 한탄하고, 세계의 정상(正常)을 회복하려면 묻어 버린 우리의 뿌리를 다시 파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한국 교회와 사회에 바치는 희망의 소리로서 선포되었다.

한편 1980년대 한국 교회 안에 나타난 교계 일각의 자성의 소리와 중도와 관용의 정신 주장은 교회 활동의 반경에 대한 흔들림 없는 원칙 확립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역사 내에 주어진 경계를 가지고 있다는 분명한 인식이 그것이다. 즉, 교회는 교회로서의 한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우선 교회는 활동의 반경에서 역사적 제한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북한 선교를 인내하며 준비하되 이 교회가 소속된 나라의 국익과 안보에 해(害)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하나이다.

나아가 교회는 활동의 원리에서 역사적 제한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가 그 역사 개혁과 혁신의 길에서 근거와 척도로 삼을 활동 원리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라고 보았다.

한편 교회 활동에 대한 이러한 원칙 확립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신들과 다른 입장들에 대해서도 중도와 관용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앞서 말한바 자기 정계(定界)의 유한성 자각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입지가 한정된 것이며 또 자신이 고유한 것처럼 동일하게 고유한 다른 정계들이 이 역사 안에 함께 펼쳐진다는 견지에서 자신의 정계성은 곧 다른 것들과의 상보성(相補性)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여기서 상호 공존의 중도와 관용의 폭이 존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타나는 정계성과 상보성의 인정은 이 역사가 하나님에 의해 섭리되고 인간은 그분이 보내 주신바 각자의 구역에서 맡은바 사명을 감당한다는 역사인식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전도서의 말씀이 여기 새롭게 들린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모든 극단을 피할 것이다.”

 

Posted by 차동신   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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