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전개된 한국 교회의 선교는 그 신학에 있어서 심한 양극화 현상을 노정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보아, 그것은 이른바 ‘복음주의 전도’와 ‘하나님의 선교’의 대립,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의
대립,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대립 양상인 듯 비추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은 일면 지난 10여년의 한국 교회의 자취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시각에서부터 시발(始發)된 것이기도 하였다. 즉 1980년대의 한국 교회는 회개운동을 필요로 했는데, 그 까닭은 ‘1970년대의
한국 교회가 곧 대회 설계에만 급급하였던 까닭에 오늘은 참된 교회로의 갱신운동이 절실하다’는 풍의 논조가 시대를 휩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의 교회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필경 교회의 역사를 자신만의 준거(準據)에서 부정(否定)하는 데 연결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부정당했던 교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참된 교회로 다시 태어나라는 이러한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교회의 양분 현상은 차라리 당연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것이 참된 교회의 진위(眞僞)를 가리는
비판이었다고 할 때, 자기가 속한 교회나 기관의 대사회적 표출로서 이루어지는 선교신학의 양분과 자기만의 정당성 주장에서 오는 선교신학 양분의
공고화(鞏固化) 그 깊은 골짜기 역시 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한국 교회는 그 조직과 신학에 있어서 크게 양분된 듯 보였다.
구체적으로 이른바 기성교회와 에큐메니칼운동 기관의 여정이 다소 대립적 요소들로 채워졌으며, 기성교회의 사랑은 에큐메니칼운동의 정의(正義)를
배제하는 듯 보였다. 또한 한국 교회의 거대한 양적 성장은 그 질적 미숙의 다른 이름처럼 얘기되는 한편, 사회 구원을 외치는 목소리는 내적
경건을 결여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한국 교회 양분 위기의 틈을 타고 의심을 받을 만한 경건의 기류들이 한국 교회
대중 속으로 스며들어 한국 교회를 위협하였으며, 교계 일각에서는 성은(聖恩)의 신비로움 상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던 것이 당시 한국 교회의
단면이었다. 이때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사회의 존경이 대상이 되지 못하였고 심지어는 자기만의 공간 속에서 문을 굳게 닫고 있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지탄받기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