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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제 목 : |
아펜젤러 H. G. Appenzeller, 1858-1902, 미북감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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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날 짜 : 2008-02-03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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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수 : 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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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묵상내용]
양화진 제1묘역에는 한국감리회 최초의 선교사이며,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을 설립한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선교사의 비문이 배재동창회에 의하여 건립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자리에는 그의 아들이며 배재학당 교장과 재단 이사장으로 학생들에게 신앙과 애국심을 교육한 헨리 닫지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 선교사의 묘가 있습니다. 한편 이곳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한국에서 백인 선교사의 첫 자녀로 출생하여 이화학당 제6대 교장과 이화여자전문학교 초대학장으로 교육에 헌신하였던 H. G. 아펜젤러의 딸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가 안장되어있습니다. 이들 묘비의 상단에 새겨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노라”라는 성구가 실로 한 가족을 통해 보여진 것입니다.
H. G. 아펜젤러는 1884년 미감리회 선교사로 임명되어 한국에 도착했을 때 다음과 같은 첫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옵소서.” 아펜젤러는 우선, 교육활동에 자신의 혼을 쏟았습니다. 1886년 6월 8일 배재학당을 창설한 것이 그 예시입니다. 배재(培材)학당은 고종 임금이 지어준 이름으로 정부의 정식인가를 받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887년 10월 9일 정동제일교회를 세우고,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였으며, 서구식 의회법을 제일 먼저 시행하고, 벙커와 함께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돕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성서번역사업과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를 순 한글로 창간(1897년 2월)하여 당시 한문(漢文) 위주의 사회에서 한글을 장려하는 등 교회뿐만 아니라 일반사회를 계몽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아펜젤러야말로, 한국의 교회, 교육,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선구자의 사명을 짊어진 개척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성서번역위원회 참석을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 짙은 안개로 인하여 기소가와마루(木曾川丸) 배와의 사고로 1902년 6월 11일 밤 순직하였습니다. 그러나 J. S. 게일 선교사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하였듯,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한국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오늘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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