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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7 Sat.
ㆍ제 목 :   만주와 일본에서의 성경 번역
ㆍ날 짜 :  2006-02-05 Sun.  Prev Next ㆍ조회수 : 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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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H. G. Underwood)는 장로교회 선교사로서 처음 한국 땅을 딛는다. 1885년 4월 5일의 일이다. 그런데 그는 한국에 들어올 때 벌써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온다. 일본 수신사 박영효의 비공식 수행원이었던 이수정(李樹廷)이 번역한 마가복음이었다. 1885년 일본 요코하마의 미국성서공회 간행이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들어갈 때 이미 그 나라 말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간 유래는 없었다. 한국 개신교회 역사에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필경 그 책이 한국인 번역의 첫 성경이라고 여겼을 언더우드는 한국에 와서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에도 벌써 만주에서 번역된 한국어 성경이 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 서상륜(徐相崙)의 기동성 있는 발걸음이 거기까지 미쳤던 것이다. 1884년 황해도 장연 솔내에 한국인의 손으로는 처음 세워진 교회당을 설립한 그는 이미 1873년부터 이응찬(李應贊)과 함께 만주 주재 스코틀랜드 선교사인 존 로스(John Ross)와 존 매킨타이어(John McIntyre)를 도와 성경 번역에 착수하고 있었다. 1882년 심양 문광서원 간행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쪽복음서들이 그 처음 책이었다.
한국이 서서히 개국하기 시작한 것이 1882년의 일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만주와 일본에서의 성경 번역이 세계와 복음과의 접촉을 얼마나 앞당긴 것이었는가를 새삼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언더우드는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세례를 베풀게 된다. 이것은 이미 한국인을 통해서 스스로 회심한 사람들의 신앙을 확인하고, 성직자로서 이들을 성도들의 공동체에 참여시키는 공식적인 세례식이었다는 것이 그의 술회이다. 초대 선교사들이 광범위하게 지방을 순회하며 전도한 데는 이와 같이 교인들을 찾아 신앙의 순도를 확인하고 지탱시켜 준다는 목회적인 관심의 의미도 컸던 것이다.

이렇게 한국 개신교회의 시작은 압도적으로 성경의 전파와 연결되어 있었다. 「국제선교리뷰」의 표현대로 한국인들은 성경을 생활의 최심장부에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실제로 1890년대의 한국에서 10년 동안의 성서 보급량은 중국에서 50년에 걸쳐 보급했던 양과 같았을 정도다.

 

Posted by 차동신   200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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