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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年 09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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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제 목 : |
셔우드 홀 Sherwood Hall, 1893-1991, 미북감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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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날 짜 : 2008-02-10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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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수 : 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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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묵상내용]
우리나라 국보 1호인 남대문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남대문은 결핵을 방어하는 성루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한국최초로 발행된 크리스마스씰의 도안이 남대문이었던 것이 그 예입니다. 당시 결핵은 거의 불치병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이 당시 현실을 말해줍니다.
“결핵은 다른 나라에서는 20명에 한 사람 꼴인데 한국에서는 5명 중 한 사람 비율로 희생자가 난다. 일단 병균이 침투하면 한국인은 병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결핵은 불치의 병으로 ‘부끄러운 병’이며, 악귀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이 운명적으로 받는 벌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요양원은 치료뿐만 아니라 계몽과 교육목적에서도 꼭 필요하다.” 이처럼 결핵의 치료를 위해 애쓰고 헌신한 선교사가 바로 셔우드 홀 선교사입니다.
셔우드 홀은 평양지역 의료선교사였던 윌리암 홀(William J. Hall)의 2세로서,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건너가 1923년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24년 뉴욕 홀츠빌 서퍼크 결핵요양소에서 결핵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1925년 8월 미국감리회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926년 4월 19일 내한하였습니다. 1926년 7월에는 해주 구세병원 원장, 운산금광 담당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1928년 10월 27일 한국 최초로 폐결핵 퇴치를 위한 ‘해주 구세요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홀의 의료선교의 공로를 인정하여, 1984년 한국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울시는 명예시민증을 수여했습니다.
그의 부인 메리안 B. 홀(1896-1991) 역시, 남자의사들이 거절한 마당에 만삭인 몸에 위험을 무릅쓰고 추운 겨울밤 시골을 찾아가 앓고 있는 청년의 생명을 구할 정도로 헌신적인 선교사였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실로 우리를 뜨겁게 합니다. “요양원 설립 10주년을 맞는 오늘, 감회 깊게 시작 당시의 그 어려움들을 되돌아본다. 마치 신비한 힘으로 모든 게 이뤄진 것같이 느껴진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었고 그 꿈에 성실히 매달렸기에 하나님께서 이를 성취시켜주셨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은 친구들을 통해 도와주셨고, 우리의 온갖 난관은 극복되었다. 이제 이곳은 절망에 빠졌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는 장소가 되었다.”
[오늘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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