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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7 Sat.
ㆍ제 목 :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
ㆍ날 짜 :  2006-02-12 Sun.  Prev Next ㆍ조회수 : 4,052 
제목 없음
조선의 유교는 그 종교적인 국면이 제거되고 현실적인 윤리 기강의 범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선에서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언어들이 쓰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당시 조선을 접한 사람들은 조선이 매우 비종교적이라는 인상을 받고 있었다. 가톨릭의 달레(Charles Dallet)는 한국인의 종교란 결국 조상 숭배의 형태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또한 선교사 매켄지(F. A. McKenzie)는 1905년 당시 서울에는 종교적 의식을 집행하는 예배 처소가 하나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영국의 저명한 여행가인 비숍(I. B. Bishop) 여사도 한국 사람들은 종교가 없는 백성인 것 같다며 다만 저급한 신령 숭배인 샤머니즘 형태밖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한국인이 비종교적이라는 인상은 이들 관찰자들이 짧은 시간 한국을 스쳐 지나가면서 가질 수 있었던 주마간산의 감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폄하 여론의 영향일 수도 있었다. 다만 종교 의식을 집행하는 예배 처소가 하나도 없다는 매켄지의 말에서 볼 때, 근대 한국이 외형적으로는 매우 비종교적으로 보여졌음은 확연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오랜 종교적 전통을 알게 되면 한국인이 비종교적이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근대 한국은 비종교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종교의 진공상태를 겪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은 새크라멘털(sacramental)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새크라멘트는 초월의 반대 개념으로서 서로 이질적인 두 차원의 연결과 교섭 내지는 합일을 의미한다. 복합과 종합 및 총화의 의미가 강하다. “한국인은 찬란한 이론과 엄격한 현실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넓은 심연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한다”는 블랜드(J. O. P. Bland)의 말은 바로 이 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볼 때, 한국에서 불교는 너무 신비주의에 흘러 한국인의 정서에서 소외되었고, 반면에 유교는 신비주의적이고 정서적인 요소를 빼놓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종교적 갈망에 만족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헐버트(H. B. Hulbert)가 단정한 대로, 근대 한국에서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신비적인 종교인 기독교밖에는 이 백성에게 호소할 종교가 따로 없었다.”

 

Posted by 차동신   200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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