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은혜 사이에서
[본문말씀]
로마서 6: 12∼23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 14)
[묵상내용]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가장 적절한 책이 아마도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아닐까 합니다. 빵 한 덩어리를 훔쳤다는 이유로 20년간 감옥신세를 지고 탈출한 죄인 장발장은 주교의 환대를 받습니다. 하지만 죄의 유혹은 너무도 강해서 그는 주교의 은그릇을 훔쳐 밤에 도주합니다.
결국 그는 순경에게 잡혀 주교의 집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주교가 장발장을 보고 말합니다. “이 은그릇은 선물이었소. 하지만 일부였을 뿐이지요. 당신은 은촛대를 가져가는 걸 잊었더군요.” 마땅히 받게 될 비난을 기다리던 장발장은 뜻밖에 은혜의 기습을 받습니다. 가난과 감옥을 눈앞에 둔 바로 그 순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자유와 풍요로움이 온 것이었습니다. 은혜로 다시 시작된 장발장의 삶은 사랑 그 자체가 됩니다.
한편 장발장의 반대편에는 법, 즉 ‘잘못 이해된 영성’에 충실한 한 사람 자베르 경사가 있었습니다. 자베르는 누구보다 자기 의를 확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장발장을 다시 체포하기 위해 일생을 보냅니다. 그는 많은 선한 일, 곧 도둑, 속임수, 부패 없는 사회를 열망합니다. 하지만 그의 세계에는 은혜를 위한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법만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법으로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순간 장발장이 무자비한 추적자인 자신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걸자, 그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누더기 같은 존재라는 진실을 인정하기보다 차라리 자살을 택하고 맙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은혜를 경험한 죄인 장발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그 이름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의 그늘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우리의 선생이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갈 3: 24). 율법과 은혜 사이에서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자녀된 삶을 살아갑시다.
[오늘의기도]
율법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사 구원의 은혜를 내려주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예전의 구습에 빠지지 않고 오직 은혜의 풍성함 가운데 거하도록 인도하소서. 아멘.
조지 오글 George E. Ogle, 1929-, 미북감리회
[묵상내용]
여성노동자의 어머니라 불리는 조화순 목사에게 “목사님의 목회와 운동의 스승은 누구이십니까?”라고 질문할 때마다, 그녀는 거침없이 ‘오명걸 목사’라고 답합니다. 오명걸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조지 오글 선교사는 한국노동자의 친구입니다. 그는, 1955년 선교사로 한국을 방문하였다가 귀국한 뒤 1960년 결혼하고 나서 다시 한국으로 부임할 정도로 한국과의 인연이 참으로 긴 미국선교사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오글 선교사는 1962년부터 인천선교부에 부임하여, 인천 동구 화수동에 초가집 한 채를 구입하고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오글 선교사는 한국노동자의 지위향상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였습니다. 이후 1967년에는 인천을 근거지로 영등포, 부산, 대전, 영월, 함백탄광 등지에까지 활동무대를 넓혀갔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한국근로자의 실태와 교회의 과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라는 저서를 남겼고, 1973년에는 서울대학교 노사관계 전임강사, 감리교신학대학의 선교사학 교수, 노동조합 지도자 교육과정의 강사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목요기도회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발언하다가 결국은 강제추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오글 목사는 미국으로 추방된 뒤에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부인, 부모들과 함께 정부의 사건 조작을 알리고 이들의 석방을 호소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렸습니다.
오글 선교사는 한국노동자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며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가 오글 목사를 2002년 제5회 한국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하여 시상하였던 것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원했던 오글 목사는 자신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지금도 여전히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혁당 사건 등을 소재로 『20세기 한국의 이야기(How Long, O Lord-Stories of Twentieth Century Korea)』라는 역사소설을 최근 출간하였습니다.
에녹에게 배웁시다
[본문말씀]
창세기 5: 18∼24, 히브리서 11: 5∼6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히 11: 5)
[묵상내용]
성경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옮겨진 인물이 두 사람 있습니다.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엘리야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에녹입니다. 엘리야는 위대하고 능력있는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에녹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임에도 300년 동안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께 들림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신다. 그 이유는 이 땅에는 유명하고 특별한 사람보다 보통사람들이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특별한 업적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성공과 특별한 대우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더욱 유명해지고 더 특별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유명한 엘리야만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주 평범한 에녹에게도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 받는 은혜를 내리셨습니다.
일찍이 미가 선지자가 고백한 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이 아닙니다. 오직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미 6: 6∼8).
“에녹은 (…)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창 5: 21∼22).” 에녹(순종하는 자)은 므두셀라(죽음과 심판)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신앙을 결단한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은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자신의 인생과 신앙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죽음이 온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과연 바른 삶이 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죽음이 인생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에녹과 같은 자입니다. 평범한 존재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삽시다. 유명인이 되고자 노력하기보다는 삶 속에서 늘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에녹처럼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기도생활을 회복합시다
[본문말씀]
에베소서 6: 18∼20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 18)
[묵상내용]
R. A. 토레이가 쓴 『기도의 영을 받는 법』이라는 책 서두에 나온 글입니다. “당신은 무엇으로 기도하는 사람인가? 입술로 기도하는 사람인가? 기도의 대본을 들지 않으면 기도하지 못하는 기도의 연기자인가? 억지로 마음을 짜내야 간신히 몇 마디 기도가 나오는 답답한 기도자는 아닌가?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지만 말로 표현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지 아니한가? 기도는 내 머리와 이성으로는 힘있게 하지 못한다. 기도는 기도의 영인 성령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없는 신앙생활과 성령 없는 기도생활에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뻔뻔한 그리스도인은 아닌가?” 우리로 하여금 가책과 함께 큰 도전을 느끼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항상 기도의 갈증을 느껴야 합니다. 기도생활에 승리해야 인생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자기 느낌이 없이 비슷비슷한 말들로 유창하게 기도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마 6: 7).“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18절).” 기도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힘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생활의 유익함을 깨닫고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첫째,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영적 교제를 이루게 됩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도 깨집니다.
둘째, 기도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 24).”
셋째, 기도를 통해 걱정과 근심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 6∼7).”
넷째,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받게 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 13).” 오순절에 120문도가 ‘기도에 힘쓸 때’ 성령께서 임재하셨습니다. 다섯째, 기도를 통해 성도는 영적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피곤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에 게을러지지 않도록 더욱 힘씁시다.
[오늘의기도]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배려는 복
[본문말씀]
빌립보서 2: 1∼5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 4)
[묵상내용]
배려는 관심을 가지고 남을 생각해주는 마음을 뜻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4∼5절).” 그러니 성도의 삶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배려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스테디셀러가 된 『배려』라는 책에 의하면, 배려는 삶의 세 가지 조건이 된다고 합니다. 첫째, 배려는 행복의 조건이 됩니다.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 때 오히려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황금률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 31)”는 말씀입니다. 둘째, 배려는 즐거움의 조건이 됩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내 것만 챙기는 사람에게 참 기쁨이 올 수가 없습니다. 셋째, 배려는 성공의 조건이 됩니다. 배려와 성공은 정비례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이기적인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모진 마음으로 남을 눌러 출세하는 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요셉은 자기 코가 석자인데도 술 관원과 떡 관원의 근심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꿈을 해석해주는 배려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그는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되었고 성공하게 되었습니다(창 39∼41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장)나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장)를 보더라도, 배려의 삶을 산 사람들이 결국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드비전〉이라는 세계적인 어린이구호기관도, 한국전쟁 당시 피얼스 박사(당시 종군기자)가, 고아가 깡통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돕기 위해 시작한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내 이름으로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베푼 배려의 삶이 곧 주님께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웃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 필요를 채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이웃을 향한 배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를 소원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각각 자기 일을 돌보는 데서 머물지 않게 하소서. 배려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복된 삶으로 우리를 이끄소서. 아멘.
성령의 은혜를 누립시다
[본문말씀]
로마서 8: 12∼2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 14)
[묵상내용]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섬기고 따를 때,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 각 사람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육신대로 살지 않고 성령으로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을 따라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삽니다(13절). 하나님 없이 살던 때에 우리는 모두가 예외 없이 몸의 행실(죄의 본성)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성령을 모시지 않고 살았을 때 우리는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으며, 우리 각자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기는 쪽으로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13절).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살 때에 우리는 몸의 행실(죄의 본성)을 따르는 대신에 성령을 좇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성령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14절). 성령을 모시고 있는 자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15절)”라고 부르게 되며,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친히 인도해주십니다.
셋째, 성령께서는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주십니다(26절).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옆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할 때에도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해주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혜가 있습니다. 몸의 행실(죄의 본성)을 죽이며,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고, 성령께서 친히 간구해주시는 은혜를 날마다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날마다 성령을 모시고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감으로 죄의 본성에서 떠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그 은혜를 날마다 누리게 하소서. 아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본문말씀]
로마서 8: 28∼39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 28)
[묵상내용]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힘든 일들이 생기며, 여전히 슬픈 일들도 찾아오곤 합니다. 오늘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려운 일을 주시는지, 또 우리는 어떻게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깨닫고 새 힘 얻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28절).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에야 비로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모든 상황과 처지를 선용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28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믿는 자에게 선하도록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에게 형통한 날을 주시기도 하시며, 반면에 우리를 위해서 곤고한 날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형통한 날이나 우리의 곤고한 날 모두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선용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곤고한 날을 보내고 있을 때에도 낙심하고 좌절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곤고한 날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선을 이루어가심을 믿고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모든 상황을 이기게 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39절).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를 우리 모두가 깨달아 알기를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선용하심을 믿습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모든 상황을 이기게 하소서. 아멘.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본문말씀]
로마서 9: 1∼9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 1∼3)
[묵상내용]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첫째, 바울에게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으로서 믿지 않는 영혼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1∼3절).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의 형제들이 믿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한 큰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을 느꼈으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신의 형제들이 구원받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그 마음은 성령께서 주신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 없이 살던 자들을 향해서 가지고 계시던 목자의 심정이었습니다(마 9: 36).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도 바울이 안타까워했던 이유는,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8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특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언약들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러나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났다고 해서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대를 잇지 못하고, 오직 약속을 따라서 태어난 이삭만이 약속의 자녀가 되어 아브라함의 대를 잇는 믿음의 자녀가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동족을 향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을 품기 원합니다.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성령께서 주시는 안타까운 마음을 따라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부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믿지 않는 이웃들을 향해서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 우리를 사용하여주소서. 아멘.
젠슨 Anders K. Jensen, 1897-1956, 미북감리회
[묵상내용]
우리는 항상 더 큰 사랑을 열망합니다. 그러한 사랑에 대하여 성서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가르쳐줍니다. 한국을 위하여 갖은 고통을 당할 뿐만 아니라,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말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보여주었던 선교사가 있습니다. 바로 젠슨 선교사입니다. 앤더스 크리스 젠슨(Anders Kristian Jensen, 全善) 선교사는 1897년 3월 14일 덴마크 네스보그(Naesborg)에서 출생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 미육군으로 참전하면서 1818년 11월 11일 미국시민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27년 보스턴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감리교 국내선교부에서 일하다가 1927년 8월 한국선교사로 내한하였습니다.
젠슨 선교사는 약 7년 동안 인천지방에서 선교사업을 하다가 안식년 차 귀국했지만, 1년 후 다시 돌아와 여전히 수원•인천•서울 등지의 순회선교사로 시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국 사랑에는 고통이 따랐습니다. 그는 19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가, 8•15 광복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일하였지만, 1950년 6월 개성 출장 중에 6•25 전쟁까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D. N. 클락의 기록은 젠슨 선교사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말해줍니다. 젠슨은 북한군 포로가 되어, 평양에서 압록강(만포진)에 이르는 ‘죽음의 행렬’에 끼게 되었고, 3년이나 되는 억류생활을 하다가 1953년 5월 휴전으로 간신히 석방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젠슨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한국을 향한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1954년 10월 부인과 함께 또 다시 내한하여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교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들에 도움을 주면서 전후(戰後) 복구사업에 진력했고, 1955년에는 연세대학교 재단이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56년 11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미국고문단’ 일행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회담을 위해 수고하던 중, 젠슨은 심장마비로 별세했습니다. 그 깊고도 큰 사랑을 보여주었던 젠슨 선교사를 위해 한국교회는 정동교회 안에 젠슨관을 건축하고 그의 흉상과 추모글을 새겨 기념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보시는 예수님
[본문말씀]
요한복음 9: 1∼7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 3)
[묵상내용]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정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개입하기보다는, 말만 앞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교회공동체에서조차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고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일들로 논쟁하기 십상이고, 그로 인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과 본문 이후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도, 시각장애인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진실한 마음보다, 말로 평가하고 판단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제자들조차도,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사람을 긍휼히 여기거나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2절)”라고 시각장애인을 대상화하여, 신학적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는, 핍박받던 자리에서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함께 겸손하게 아파했던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륜과 덩치가 거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은 잃어버리고, 명분과 경건의 껍데기만을 추구하는 듯하여 심히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셨습니다. ‘이 사람의 죄냐 저 사람의 죄냐’하는 논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고, 치유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4절).” 비본질적인 논쟁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고통을 겪고 있는 한 영혼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실천이 금세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이루어야 하는 시급한 과제라고 언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논쟁과 겉치레에 신경쓰기 쉬운 요즘,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진심으로 공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실천이 우리 모두에게 역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오늘의기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저희들이 언제나 주님처럼 문제의 본질을 분별하고, 주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참 제자들 되게 하소서. 아멘!
믿지 않기로 작정한 완악함
[본문말씀]
요한복음 9: 24∼34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 25)
[묵상내용]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셨던 사람들이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마치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오직 예수님을 죽이고자 이를 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를 일으키기 위해, 더 큰 이벤트와 ‘보여주기 위한 행사’를 준비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가 휘둥그레지도록 노력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기로 작정한 이들에게는 죽은 자가 일어나는 기적도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사 1: 5)”라고 거침없이 외친 이사야와 같이, 세대가 완악할수록 오히려 예수 복음의 원칙과 회개, 죄 사함을 타협 없이 전해야 합니다. 로마서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롬 10: 21),” 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 17)”라고 하신 바와 같이,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영역에 속한 것임을 겸손하게 인식하고, 말씀 자체를 전하는 전도와 선교의 정공법만이 유일한 하나님나라의 대안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침받은 시각장애인은, 많은 것으로 치장하고 복잡하게 잘잘못을 따지는 바리새인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온 몸으로 아는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전에는 시각장애인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보게 되었다는 것(25절)’입니다. 얼마나 단순하고도 통쾌한 고백인가요? 수많은 프로그램과 유명강사의 부흥대회를 통해서도 피곤함과 허무함만 남는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회복해야 할 것은 예수님 그분과 직접 일대일로 만나는 교제(예배)와 능력(체험)의 회복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경험하고 믿음이 회복된 것처럼, 예수님의 능력이 믿음 없는 세대의 유일한 희망 되심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기도]
반복하여 거스르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저희들을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주의 능력을 체험하고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들 되게 하소서! 아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
[본문말씀]
요한복음 10: 7∼15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 11)
[묵상내용]
시대가 혼란하고 교회의 영성이 세속화될수록, 이단은 무서운 기세로 창궐하게 됩니다. 이는 교회사를 통해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근자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에 우후죽순으로 이단의 무리들이 일어나 구원받은 성도들마저 파멸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는 결과가 명확합니다. 가정파괴, 진정한 평안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여 종교적 구원을 완성하려는 공로의인 사상, 세상에 대한 긍휼함과 사랑이 아닌 정죄와 판단에 기초한 포교활동 등으로, 결국에는 불행한 결말과 의심으로 끝나는 것이 이단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의 죄악과 사망권세가 무너져내리고 새생명으로 옮겨집니다.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생명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절)”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여러 번 반복되는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 6)”하셨고, 사도행전에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 12)”고 재차 기록되어있습니다.
박옥수 구원파,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통일교 등이 이제는 자신들의 이단활동을 위해 단체이름을 조변석개하는 등 포교방법 자체가 지능화되고 악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가 한 영혼에 대한 관심보다 전체적인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목회가 아니라 기획과 조직운영을 통해 세를 불리는 것에 관심을 갖는 동안, 사탄의 무리들은 연약한 지체들을 유혹하며 교회의 허를 계속해서 찌를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를 때만이 참 행복과 평안을 누리게 됨을 전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편지’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기도]
선한 목자 되신 주님! 미혹하는 사탄의 세력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미혹의 영이 예수의 진리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주의 성도들을 보호하소서! 아멘!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계획
[본문말씀]
로마서 11: 1∼12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 5)
[묵상내용]
근래에 로또복권에 당첨되었던 사람들의 복권당첨 이후의 삶을 추적하는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한결같은 결론은, 그 사람들의 삶은 복권에 당첨되기 전보다 훨씬 비참해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사람들은 한꺼번에 쏟아진 돈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인격에도 금이 가고 구멍이 나서 깨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하는 선민사상 때문에 교만해졌습니다. 그들은 눈이 어두워지고 생각이 닫혀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들 멋대로 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복의 통로가 되었어야 했는데 자기들 스스로 복을 너무 많이 받으려 해서 망한 백성들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가 완전히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입니까? 이 물음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구약의 엘리야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할 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 죽고 자기 혼자만 남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 말고도 남은 자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생각할 때에는 망한 세상, 끝나버린 세상 같았지만, 그러나 엘리야 눈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 하나님이 남겨두신 칠천 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믿음에는 절망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패역한 백성과 핍박자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암담해 보여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을 초월하는 큰 뜻이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침묵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만사를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시선 즉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의기도]
주님! 세상 이론에 젖어서 주님의 계획과 뜻을 보지 못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사 눈을 열어주소서. 아멘.
내게 주신 직분을 영광스럽게
[본문말씀]
로마서 11: 13∼24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롬 11: 13)
[묵상내용]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을 모시고 부목사로 교회를 섬기던 시절, 어떤 때는 그 목사님을 뵐 때에 존경을 넘어서 나 자신에 대한 절망감이 밀려올 때도 있었습니다. 목회하시는 모든 면에서 심방이나, 설교나, 교회행정이나, 삶의 모습이나 근면, 성실, 부지런함 등 모든 면에서 빈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나중에 담임목회자가 된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40여 년을 흐트러짐 없이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충성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때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역자수련회 기간 동안 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그 비결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로마서 11장 13절 말씀을 언급하시면서,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붙잡고 평생을 달려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만왕이신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내게 맡겨주시다니….’ 이 사실을 생각하면 흥분되고 감사하게 되어서, 무슨 일이든지 적당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했고 말씀에 매달렸고 부지런히 움직였고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나 물질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크게 여기고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은 두 번째, 세 번째로 참작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크고 귀하게 여기는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 그분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대접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목사님에게, 하나님께서는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일마다 때마다 부어주셨고 목사님은 주님이 주신 힘으로 당신의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맡겨주신 일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과 같이 존귀하게 쓰시고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십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나 같은 것에게 생명의 복음의 빛을 비춰주시고 이 삶의 터전에서 주님을 섬기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신비
[본문말씀]
로마서 11: 25∼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 33)
[묵상내용]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닭 한 마리와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하고 아침을 알려주는 시계역할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는, 가도가도 집은 없고 해는 저물어 할 수 없이 길 옆에다 천막을 치고 잠을 자야 했습니다. 랍비는 나귀와 닭을 천막에다 묶었습니다. 랍비가 천막 속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서 등잔대가 그만 넘어지고 불이 꺼졌습니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 기도를 하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 사이 맹수들이 당나귀와 닭을 잡아가버리고 없었습니다.
랍비가 찢겨진 천막을 챙긴 후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가 어느 동네 가까이에서 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네로 들어갔더니 온 동네가 초토화되어있었습니다. 지난 밤에 강도떼가 이곳에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가축과 물건들을 빼앗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랍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만일에 등불이 켜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도 냈더라면 자기도 틀림없이 죽었을 것인데, 이 세 가지를 미리 잃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도 많았지만 잃어버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었기에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두 종류의 사람들 모두에게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과 성경을 부정하려는 사람들에게 신비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아무리 들어도 신비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어서 신앙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믿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아무리 연구해도,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또 신비로움이 남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33절)!”
인간 중에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34절). 그러니 아는 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36절)”
[오늘의기도]
주님, 오늘도 내가 이해 못하는 신비스러운 일을 통해서도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멘 .
[묵상내용]
구한말 한국에서는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 노동자나 농민들이 극심한 생활난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이를 효과적으로 수습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와이 이민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설득작업에서 당시 인천내리교회의 존스라는 선교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조원시’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존스는 내리교회의 한국인 신자들을 통해 그들의 친지나 이웃사람들에게 하와이 행을 설득했으며 서울 등지에도 직접 다니면서 교인들에게 하와이 이민 모집에 응할 것을 권고했던 것입니다.
본래 존스 선교사는 목회적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가 1892년 아펜젤러 목사의 뒤를 이어 제물포구역 담임자로 파송되었을 때 내리교회에는 단 한 명의 교인이 있었지만, 부임 1년 만에 교회는 세례교인 9명과 학습인 23명으로 부흥했습니다. 또한 전도의 방편으로 영화학교라는 신식학교를 설립(1893년)하여 교회발전을 급속히 이루었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사회풍속 등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성서번역위원으로 일하는 한편 영어사전을 편찬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1892-1893년에는 배재학당장을 지냈고, 1903년에는 〈한국기독교청년회〉 창설에 공헌하였으며, 1892년 찬미가를 편찬하여 찬송가를 보급하는 일도 도왔습니다. 그는 1910년 5월1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감리교신학교 교장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2005년 7월 18일, 인천시 내리감리교회 예루살렘 성전에서 교회창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존스 선교사의 활동 및 업적을 재조명했던 학술세미나의 평가들이, 그의 능력과 업적을 잘 말해줍니다. “한국에 온 최연소 선교사였던 존스 선교사는 한국역사와 종교, 문화와 풍속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학자였다.” “연합정신을 강조한 존스 선교사의 신학교육은 1930년 남•북감리교회가 합동해 ‘기독교조선감리회’를 형성하는 데 신학적인 토대를 놓았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를 배출해 기독교 민족운동이 확산되는 데도 밑바탕이 됐다.” “존스 선교사가 1900년 순한글로 창간한 한국최초 신학잡지인 「신학월보」는 한국기독교와 일반역사 및 문화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준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존스 선교사가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영역과는 거리가 먼 이민설득에 발벗고 나서게 되었던 것은, 그가 가난으로 고통받는 한국인들을 보며 함께 아파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
[본문말씀]
빌립보서 3: 1∼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 14)
[묵상내용]
21세기. 지금 우리는 지식의 홍수,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방 안에서 인터넷을 연결하면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모든 지식을 접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과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해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존재의 참뜻을 알 수 없습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영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고 만족한 삶을 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사도 바울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소개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害, 나쁜 것)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7∼9절).”
이것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권세와 부귀를 누려보았던 그가 고백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고, 예수님 안에 기쁨이 있고, 예수님 안에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의 기쁨은 잠깐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언젠가 무너질 때가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가지는 소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소망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기에 사도 바울은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12절).” 우리들도 바울처럼 주님을 푯대삼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끊임없이 달려가는 믿음의 삶을 삽시다.
[오늘의기도]
생명의 계절, 주님의 사랑 안에서 끝까지 주님을 푯대삼아 달려가게 하소서. 아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본문말씀]
빌립보서 3: 15∼21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 20)
[묵상내용]
앙드레 말로(Andre-Georges Malraux, 1901∼1976, 프랑스 소설가)는 21세기를 가리켜 영의 시대가 되든지 파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없는 과학주의는 제동장치(brake) 없는 자동차와 같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제동장치(brake) 없는 자동차,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엄청난 과학의 발전으로, 살기에 편리해졌고 모든 것이 빨라졌습니다만, 점점 질병도 많아지고 사람들 입에서는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의 향락주의와 세속주의가 점점 인간성을 파괴하고 영을 무너뜨려 내면의 행복이 무너지고 만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 독일 심리학자, 정신분석가)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우리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무엇을 소유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어떻게 세워가느냐 하는 존재양식 속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을 통해 실존의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앞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참 행복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간절하게 눈물로 호소하며 때로는 경고하고 책망하면서 세상의 물결에서 돌아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쾌락을 더 좋아하고 세상의 향락을 즐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속에 푹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한 번 세상의 풍파 속에 빠져들어가 그 쾌락의 맛을 알게 되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시민권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시민권이 약속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세상의 유혹을 담대히 이겨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이 땅에서 썩어질 것을 붙잡고 살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소서. 아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본문말씀]
빌립보서 4: 1∼13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 4)
[묵상내용]
신앙생활이란 다른 말로 기쁨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 은혜의 기쁨, 사랑의 기쁨, 소망의 기쁨이 가득한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바른 인격적 관계 안에서 생활한다면 반드시 주님이 주시는 소망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들을 읽다 보면 종종 ‘주님 안에서’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바울서신들에서 이 표현을 무려 164회나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언제나 ‘주님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막상 주님 안에서 살아보니,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날마다 충만히 느꼈던 것입니다.
오늘의 편지인 빌립보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인데,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했습니다. 사실 바울이 처해있는 상황은 기쁨을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탄식하며 절망 속에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는 기쁨이 샘솟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오히려 감옥 바깥에 있는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빌립보교회에게 권고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디서 기쁨을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오는 기쁨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 존재의 중심에 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샘솟는 기쁨입니다. 막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주님의 기쁨 안에 사십시오. 그 기쁨을 나누십시오. 존재의 기쁨으로 섬기고 봉사하며 사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의기도]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기쁨, 주님이 주시는 존재의 기쁨으로 충만하여 살게 하소서. 아멘.
주님과의 조화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0: 14∼17, 11: 27∼32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고전 10: 16)
[묵상내용]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고 싶은 한 어머니가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수상인 이그나스 파데르스키(Ignace Paderwski)의 연주회에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연주홀 앞좌석에 앉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몰래 빠져나간 것도 모르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습니다.
불이 꺼지고 관중들이 조용해진 가운데 막이 열렸습니다. 순간 그 어머니는 너무 놀라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무대 위 그랜드피아노 의자에 자기 아들이 앉아 손가락을 튕기며 ‘반짝반짝 작은 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 마침 무대에 오른 파데르스키는 조용히 건반 앞으로 걸어가 꼬마에게 “괜찮아. 계속하자”고 속삭였습니다. 그리고는 꼬마 뒤에 서서 왼손으로 저음 부분을, 오른손으로 주요음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완벽한 하모니는 관중들을 사로잡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 아름다운 관계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사 관계회복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살과 피를 받음으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살과 피를 이 세상 끝날까지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의 살과 피를 합당하게 받지 않는 모습을 보신다면 책망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무질서와 분쟁으로 인한 타락을 막기 위해 성찬을 받는 자의 태도를 설명합니다. 첫째는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곧 자기의 죄를 살펴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상호간의 사랑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게 받지 아니하면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며, 축복이 도리어 해(害)가 되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게 됩니다. 주의 떡과 잔은 영원한 ‘화’받음을 면케 하기 위해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기도]
은혜로우신 주님, 하나님과의 조화를 이루어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소서. 아멘.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본문말씀]
베드로전서 1: 10∼20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 15)
[묵상내용]
북유럽에 사는 흰 담비는 털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흰 담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사냥꾼들은 흰 담비의 이러한 속성을 이용해 흰 담비를 잡는다고 합니다. 즉, 흰 담비가 사는 굴입구에 숯검정을 칠해놓습니다. 굴 입구에 다다른 흰 담비는 자신의 흰털이 더러워질까 봐 굴 입구에서 서성거리다 그만 사냥꾼들에게 잡혀 죽음을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이란 구별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죄와 구별되시는 분이십니다. 죄는 그분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속에서 살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인류는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였으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셔서 그의 공로로 죄의 값을 대신 속하여 주심으로 해방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거룩함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행실도 우리의 신분에 걸맞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5절)”고 말씀하십니다. 왜 성도가 거룩해야 합니까? 첫째로,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과 성도가 허락받은 ‘복된 소망’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곧 아버지의 성품을 닮는 법입니다. 셋째로, 거룩한 생활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시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지불하신 값을 생각하면 거룩과 경건에 대한 열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혼탁한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별되게 드려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구별된 삶에는 고통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곤고한 자신을 탄식할 수도 있습니다(롬 7: 22∼24). 아니 순교적 삶을 각오해야 되는지도 모릅니다. 죄와 구별된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기도]
자비하신 주님, 우리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예케 하소서. 아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본문말씀]
히브리서 4: 1∼1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 12)
[묵상내용]
크리스텐 콜드(Christen Kold)는, 그룬트비(N. F. S. Grundtvig)에 의해 세워진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사람입니다. 그의 소박하고 알아듣기 쉬운 강의는 듣는 사람들에게 항상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강의내용을 필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평생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럴 때마다 그 내용을 써두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콜드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걱정 말게. 땅 속에 묻는 하수관은 땅 위에 표시를 해두어야 찾아낼 수 있겠지만, 살아있는 씨앗은 별다른 표시를 해두지 않아도 반드시 움을 틔우는 법일세. 내 말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어느 때이고 자네의 삶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 분명하네.”
우리는 신앙의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말씀은 태초 이전에 계신 하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라 불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해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다른 종교는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여 구원을 이루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것이 그들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실 때 과거의 말씀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항상 오늘의 현존하는 말씀으로 주십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당시 그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 생명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 생명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12∼13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계시며 현재에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지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능력의 주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매순간 체험하게 하소서. 아멘.
안나 채핀 Anna B. Chaffin, 1833-1977, 미북감리회
[묵상내용]
한국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여성이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던 초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남선교사들의 선교활동뿐 아니라 그의 부인들과 여선교사들의 활동 또한 활발했다는 사실은,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별히 남편과 함께 내한하여 선교하다, 남편을 잃고도 남편의 몫까지 헌신적으로 감당하였던 안나 채핀 선교사가 그러합니다. 채핀의 남편이었던 빅터 D. 채핀(Victor D. Chaffin) 선교사는 1914년 12월 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경기, 충청노회의 허락을 받아 서울 서부지역과 경기도의 고양, 김포지역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와 동사목사(同使牧使)로 활동하면서, 새문안교회, 양평동교회 등 여러 교회를 순회시무하며 노회의 총대로 활동했던 분입니다. 그러나 선교활동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16년 6월 5일 35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안나 채핀은 남편과 사별했으나, 선교의 열정에 더욱 불을 붙였습니다. 감리회 부인성경학원 교사가 되어, 1918년 앨벗슨(Albertson)의 후임으로 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제1차) 때 뉴욕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1919-1920)하고 돌아와,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1931년에는 선교잡지인 「우리 집」의 편집인과, 「절제(The Tempreance News)」의 발행인으로 문서선교에도 힘썼습니다. 그리고 1931년 6월 14일 양주삼 총리사 집례로 개성에서 한국 최초로 여성목사가 되었습니다. 협성여자신학교와 협성신학교가 통합되면서 부교장으로 여성교역자 양성에 힘썼던 그녀의 소원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녀의 평생 사업이 여성교역자 양성에 있으므로, 일생을 바쳐 일한 은퇴 여전도사 안식관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바람대로 1948년 10월 5일 〈채부인 기념 여전도인 안식관〉이 개관되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여인이었지만, 남편을 잃은 후에도 누구보다도 한국선교에 헌신하며 한국의 여성교역자를 길러낸 안나 채핀은 한국 최초 감리회 여성 목사로서 귀감이 됩니다.
우리가 증인입니다
[본문말씀]
사도행전 2: 14, 2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 32)
[묵상내용]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던 120명의 무리 위에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각 나라로부터 예루살렘에 와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어떤 이들은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아닌가?” 이때에 베드로가 일어서서 소리를 높여 외쳤습니다. 베드로가 외친 말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는 먼저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성령의 임하심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임을 말했습니다(행 2: 14∼21). “시간이 아침 9시인데, 방언을 하는 이러한 현상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 요엘이 예언했던 일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행 2: 15∼21).” 곧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날에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실 터인데,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는 것입니다(욜 2: 28). 그리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은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는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말합니다(22∼24절).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전하는 모든 설교의 핵심입니다. 곧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언입니다. 유대인들은 죄 없으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주님을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다윗 왕의 시편(시 16: 8∼11, 시 110: 1)을 인용합니다(25∼32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리스도가 되게 하실 것과 그분의 부활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는 것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윗이 예언했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신 것에 ‘우리가 다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이유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주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께서 살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 되심을 담대히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기도]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충만하게 하셔서 살아계신 주님을 담대히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해주소서. 아멘.
세상에 본이 되는 교회
[본문말씀]
사도행전 2: 36∼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 47)
[묵상내용]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부흥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령이 임하신 후 사도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우리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하며 마음에 찔림을 받았고,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회개하며 세례를 받는 이들이 삼천을 넘었습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 교회에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여질 줄 믿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든 교회의 좋은 모델이 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이고, 집에서도 함께 모였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배우기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모이고 찬양이 넘치고 기도가 뜨거운 교회가 부흥하는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또한 사랑이 넘치는 성도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함께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믿는 사람이 하나가 되어 물건을 함께 사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 된 교회가 한 몸이 되어 사랑하는 모습이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게 된 것입니다. 본래 기사와 표적은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러나 기사와 표적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문이 열리도록 우리 교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길 원합니다.
나아가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좋은 영향력을 나타내고 섬기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온 백성들에게서 교회가 좋은 평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부흥하는 교회, 세상에 본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오늘의기도]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아멘.
생애 최고의 선물
[본문말씀]
사도행전 3: 1∼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행 3: 10)
[묵상내용]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 17).”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 이름으로 구원받은 새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도들에게 구걸을 하였고, 사도들은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6절)” 그리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이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며 기뻐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은과 금 대신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사람에게 생애 최고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일어난 변화는 무엇일까요?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이 사람은 날마다 성전에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를 드리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사람은 사람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성전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거룩한 목적을 찾게 된 것입니다.
삶의 태도 또한 바뀌었습니다. 이 사람은 미문에 앉아 구걸하기 위해 가장 애처롭고 불쌍한 모습을 해왔을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그렇게 구차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비로소 삶의 기쁨과 평화를 찾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여서, 걸어보지 못했고 정신적으로도 침체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발과 발목이 힘을 얻게 되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새 힘이 생겨났습니다. 자신감 또한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생애 최고의 선물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오늘의기도]
사랑의 주님, 귀하신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애 최고의 선물, 새로운 삶을 주심을 믿습니다. 아멘.
회개하고 돌이키라
[본문말씀]
사도행전 3: 11∼26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 19)
[묵상내용]
본회퍼 목사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오늘 이 시대의 기독교인이 값싼 싸구려 은혜를 구하는 껍데기적 신앙의 상태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적한 값싼 은혜란, 회개 없는 죄 사함, 교회질서를 무시한 세례, 고백 없는 성만찬, 참회 없는 면죄부, 순종 없는 은혜입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 오늘 우리 시대 교회에 자리잡고 있다면서, 이것들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경계해야 될 가장 큰 암초덩어리임을 자각해야 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값싼 은혜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은혜, 값비싼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은혜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회개입니다. 회개 없이 은혜만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은혜가 아닙니다. 회개 없이 은혜만을 누리려 하다 보면 인간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되고 결국에는 교회의 본질이 흐려지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제대로 값을 치르는 회개를 전제합니다. 회개 없는 은혜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났던 한국교회의 뜨거웠던 성령체험은 값싼 은혜를 구하는 중에 임했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길선주 장로를 선두로 하여서 대(大)회개운동,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의 역사가 있었기에 평양 대부흥운동은 한국교회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면서 복음의 물결이 전국으로 번지게 되는 동력이 되었고, 이를 통해 일제의 탄압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서 온 유대인과 지도자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선포의 핵심은 단연 회개를 촉구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회개했을 때 용서함이 있고 죄 사함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회개의 심령으로 충만히 은혜를 내려주시는 주님 앞에 서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회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용서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멘.
구원의 이름
[본문말씀]
사도행전 4: 1∼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 12)
[묵상내용]
요한과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주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10절).” 그리고 다시 외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12절).” 그들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뿐입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 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인류사에는 공자나 석가모니 그리고 소크라테스 등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교훈이 될 만한 행적을 남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이들에게는 결정적인 허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천국의 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의 세계, 영생의 세계, 천국복음을 전파해서 영원한 믿음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어느 산동네에 산불이 났습니다. 이때 소방헬기가 공중을 비행하면서 방송을 했습니다. “주민 여러분, 지금 산불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살 길이 하나 있습니다. 마을 동쪽으로 가면 계곡이 나옵니다. 그 계곡을 따라서 내려오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살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방송의 안내대로 계곡을 향해 내려갔고 전원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제각각 살 길을 찾겠다고 이 길 저 길 헤매었다면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을 이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기도]
주님, 우리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해주소서. 아멘.
성령충만 사건
[본문말씀]
사도행전 4: 13∼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 31)
[묵상내용]
경북대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스님이 되기 위하여 산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 들어가 보니 그곳에 여러 가지 비리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불교계를 정화시켜보겠다고 앞장서다가 그만 비리와 사기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승려가 감옥에 들어가니 감옥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담당한 교도관에게 불경을 요구했는데 성경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가 절의 중인데 왜 성경책을 주냐”고 묻자, 교도관이 하는 말이 “불경이 다 대출되어서 심심할 것 같아 성경책이라도 읽으시라고 가져왔습니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쟁이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한 번 보자’ 하면서 그 성경책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한참 읽다가 그는 누가복음 7장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내용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불경에서도 봤었는데, 그 마지막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부처는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는 과부를 향해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인연에 따라 태어났다가 인연에 따라 없어질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하고서 과부를 그냥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승려는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석가모니가 위대하고 불교가 위대해도 인간 실존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 한계를 뛰어넘으셨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그는 출소하여 승복을 벗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김성화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변화를 받고 성령충만을 얻게 됩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본문에서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을 얻고 감동을 받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성령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 시대의 사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도 늘 성령충만하여서 용기있게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아멘.
[묵상내용]
2007년은 ‘평양의 오순절’이라 불리는 1907년 대부흥운동이 있은 지 꼭 100년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Again 1907!’을 외치면서 그 부흥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길 소원하는 행사들이 곳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보았던 1907년 대부흥운동의 발판은 사실상 1903-1904년에 있었던 ‘원산 부흥운동’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원산 부흥운동의 불을 지폈고 그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선교사 가운데, 하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하디는 미국 남감리회 첫 의료선교사였습니다.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0년 9월 30일 토론토대학 선교회 지원으로 내한한 그는 제중원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1898년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로 소속을 변경하여 원산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바로 이 원산에서 그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이었던 자신의 활동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통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며 신앙간증을 하게 됩니다.
“나는 3년 동안 강원도에 교회가 처음 세워진 곳에서 애써 일하였으나 선교사업에 실패하였다. 이 실패감은 나에게 헤아릴 수 없는 타격을 주었고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기진맥진의 상태에 이르렀다.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첫 주일아침 예배시에 우리 원산교인들 앞에 섰을 때, 나는 얼굴에 부끄러움과 혼돈을 띠고 나의 교만을 고백했다. 그리고 마음의 완악함과 믿음의 부족함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빚어낸 많은 잘못에 대하여 고백했다. 이때 그들은 생전 처음으로 실질적 경험에 있어서 죄의 자각과 회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다.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또 다음 3주간 동안에 내 경험과 내 생활에 있어서 분명한 변화가 일어난 것을 그들이 보았을 때, 그들은 믿음에 대한 새로운 교훈을 배우게 되었고 그 백성을 그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도 배웠다.”
하디의 이 고백은 다른 선교사들의 회개운동으로 퍼져나갔고, 1906년 8월 평양의 선교사들까지 하디를 초청하여 집회를 가지면서, 이 물결이 평양으로 도도히 흘러간 것입니다. 참된 회개 속에서 부흥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빛
[본문말씀]
요한일서 1: 5∼10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 5)
[묵상내용]
성경에는 ‘빛과 어두움’이라는 말이 여러 번 기록되어있습니다. 빛은 어두움과 함께 있을 수 없고 어두움에 숨겨진 것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빛은 세상에 있는 것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을 비추는 빛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빛을 믿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기도하는 중에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기도할 때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빛이 빛나게 됩니다. 둘째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은 은혜를 전함으로 빛을 믿을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 10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길에 빛이 되어서 우리가 바르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해줍니다. 또 그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를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간증을 통하여 전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마음 문을 활짝 열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빛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할까요? 빛 가운데 거하는 생활은 그 빛에 비추어볼 때 자기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사람이 자기 얼굴이나 옷에 묻어있는 검은 티를 어두운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으나, 광명한 태양빛 아래 나오면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죄와 어두움에 묻혀 살 때에는 죄를 올바로 깨달을 수 없지만, 진리와 의의 빛 되신 주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의 밝은 빛이 우리를 비추어 우리가 매우 중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우리로 회개하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9절).”
또 빛 가운데 거하는 생활은 변화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밝은 빛을 체험하게 되면 어둡던 심령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개인적, 이기적, 교만에 가득 찬 삶에서 신앙중심의 삶, 하나님중심의 삶, 기쁨과 소망의 삶으로 그 마음과 생활이 변화하게 됩니다. 오늘도 빛 된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오늘의기도]
빛으로 오신 하나님, 기도와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밝은 빛을 비추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의 어두움을 회개하며 매일매일 빛 가운데 거하는 변화된 삶을 살도록 인도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14: 21∼33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삼하 14: 30)
[묵상내용]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할 것을,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들어 가르쳐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아무런 힘이 없는 과부가 자주 찾아와서 소원을 말할 때에, 결국은 귀찮아서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속히 응답하여주십니다. 그것도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주십니다.
아버지 다윗 왕을 피하여 그술에 3년 동안 피신해있던 압살롬은 요압의 지혜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압살롬은 2년 동안이나 아버지 다윗 왕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사람을 보내어 요압에게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요압에게 아버지 다윗을 만나 자기에 대해 잘 말해달라는 요청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여러 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압살롬은 종들을 시켜서 자기 소유의 밭 곁에 있는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압이 압살롬을 찾아왔습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예루살렘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술에 머물러있는 것이 더 낫겠다고 요압에게 분통을 터뜨립니다. 결국 요압이 다시 다윗 왕에게 나아가 압살롬을 만나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압살롬은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복권되게 됩니다.
압살롬은 응답이 있을 때까지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허락의 응답, 허락하지 않는 응답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응답 세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즉각적인 응답이 있지만, 때로는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응답도 있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밤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천사가 축복하기까지 천사를 결단코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천사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진리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강청하는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의기도]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기까지 실망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게 하여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