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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 목 :   안나 채핀 Anna B. Chaffin, 1833-1977, 미북감리회
ㆍ날 짜 :  2008-03-23 Sun.  Prev Next ㆍ조회수 : 5,304 
안나 채핀 Anna B. Chaffin, 1833-1977, 미북감리회

[묵상내용]

한국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여성이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던 초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남선교사들의 선교활동뿐 아니라 그의 부인들과 여선교사들의 활동 또한 활발했다는 사실은,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별히 남편과 함께 내한하여 선교하다, 남편을 잃고도 남편의 몫까지 헌신적으로 감당하였던 안나 채핀 선교사가 그러합니다. 채핀의 남편이었던 빅터 D. 채핀(Victor D. Chaffin) 선교사는 1914년 12월 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경기, 충청노회의 허락을 받아 서울 서부지역과 경기도의 고양, 김포지역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와 동사목사(同使牧使)로 활동하면서, 새문안교회, 양평동교회 등 여러 교회를 순회시무하며 노회의 총대로 활동했던 분입니다. 그러나 선교활동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16년 6월 5일 35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안나 채핀은 남편과 사별했으나, 선교의 열정에 더욱 불을 붙였습니다. 감리회 부인성경학원 교사가 되어, 1918년 앨벗슨(Albertson)의 후임으로 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제1차) 때 뉴욕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1919-1920)하고 돌아와,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1931년에는 선교잡지인 「우리 집」의 편집인과, 「절제(The Tempreance News)」의 발행인으로 문서선교에도 힘썼습니다. 그리고 1931년 6월 14일 양주삼 총리사 집례로 개성에서 한국 최초로 여성목사가 되었습니다. 협성여자신학교와 협성신학교가 통합되면서 부교장으로 여성교역자 양성에 힘썼던 그녀의 소원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녀의 평생 사업이 여성교역자 양성에 있으므로, 일생을 바쳐 일한 은퇴 여전도사 안식관을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바람대로 1948년 10월 5일 〈채부인 기념 여전도인 안식관〉이 개관되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여인이었지만, 남편을 잃은 후에도 누구보다도 한국선교에 헌신하며 한국의 여성교역자를 길러낸 안나 채핀은 한국 최초 감리회 여성 목사로서 귀감이 됩니다.


Posted by 차동신   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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