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본문말씀]
요한일서 2: 7∼11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요일 2: 7∼8)
[묵상내용]
옛계명이면서 동시에 새 계명이 되는 계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 즉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 34)”하신 말씀입니다.
‘사랑하라’는 이 계명은 이미 구약성서에도 기록되어있다는 면에서는 옛 계명입니다. 레위기에도 기록되었듯,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 18)”라는 말씀을 우리는 예전부터 들어왔기에 옛 계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계명이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계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셨으므로 사람들은 사랑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랑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것이며 우리들에게도 참된 것이 됩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는 형제를 사랑합니다. 형제에 대하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사랑과 미움 중에 한 가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형제들부터 사랑하라는 마음을 주십니다. 형제를 제대로 사랑하는 자는 자기자신을 이미 사랑하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미혹됨이나 시험 당하는 일이 없게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됩니다. 마음 속에 미움과 시기, 원망 등이 사라지게 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마음 속에 참 평안이 있게 되면 영적인 신앙생활도 자연히 성장하게 됩니다.
반면에 마음 속에 미움을 품고 있으면 미움이 눈을 멀게 하기 때문에 그의 판단력은 둔화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처한 위치가 어딘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미움과 질투 속에 살고 있는지 잘 성찰해보면 됩니다. 어두움과 빛은 함께 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취게 하고 소망과 기쁨 가운데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기도]
사랑의 하나님! 예수님의 삶을 통해 참된 사랑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빛 가운데 거하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모든 사람들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영원한 삶을 사는 자
[본문말씀]
요한일서 2: 15∼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 17)
[묵상내용]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하기 원하시나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16절).” 물론 세상이 무조건 나쁘고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공중권세 잡은 자의 손아귀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반역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15절).”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는 이 세상생활의 세 가지 특징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육체의 만족을 채우고자 하는 부패한 도덕과 탐욕,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욕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절제하지 못할 때 우리는 정욕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도 예외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능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본능을 인간의 관능적인 만족, 향락을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지만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둡게 된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허탄한 것을 자랑하는 행위로 일종의 허영심이나 교만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자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집착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자의적인 경건의 자랑, 권력의 자랑, 지식의 자랑, 미의 자랑 등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기도로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 26).
꽃이 피면 질 때가 있듯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살리라는 진리를 믿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영원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육신의 정욕, 세상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결국 사라질 것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그의 안에 거하라
[본문말씀]
요한일서 2: 18∼29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묵상내용]
성경은 오늘, 하나님 안에 거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한’ 자들을 요한은 적 그리스도라 칭하고 있습니다(19절). 적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을 부인하는 자들이요, 아버지까지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구원의 길에서 떠나도록 미혹하는 자들입니다(22∼23절).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경고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 29∼30).”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 4∼5)”고 말씀하시며 경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진리 안에 있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들입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기름부음은 오직 제사장이나 왕 또는 예언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그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거하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참되고 거짓이 없는 이 진리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것이 우리의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오직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에 속한 자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요일 3: 18∼19).
주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셨습니다. 세상에 계실 때, 그의 생애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의로운 사역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속한 우리도 그와 같이 행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가 주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을 이기고 오직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녀로 살게 하소서. 아멘.
하나님께 속하자
[본문말씀]
요한일서 3: 1∼10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 10)
[묵상내용]
세상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를까요? 가인은 동생의 행위가 의로웠으므로 아벨을 증오했습니다(요일 3: 12). 그리스도인과 세상의 관계가 이와 같습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요일 3: 13). 오히려 감사할 일입니다. 이 증오가 우리 주 예수님을 향한 그것이었기에 더욱 기뻐할 일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10절).” 사랑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그 마음에 질투와 시기와 미움이 가득할 뿐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미워했듯, 세상은 믿음의 자녀들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사랑함으로써 이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타인의 곤경을 보고도 알고도 모른 척하는 자가 진정한 형제사랑을 아는 자입니까? 혀로써만 자기를 보이려 할 뿐 실천이 없고 그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중국에는 ‘신혼부부 가정교사’라는 직업이 생겼다고 합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모두 외동아들, 외동딸로 자라 아주 일상적인 일조차 배우지 못하고 결혼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집안일도 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혼부부 가정교사’가 신혼부부의 집을 찾아가 쌀을 씻는 법, 시장에서 오이 고르는 법, 청소하는 법 등 아주 시시콜콜한 것들을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면 실천하지 못합니다. 쌀도 씻을 줄 모르는 사람은 밥도 지을 수 없습니다. 배우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가장 좋은 스승으로부터 배웠습니다. 몸소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가정교사가 되셨습니다. 사랑하라는 명령을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쌀 씻는 법을 알게 되면 밥을 하듯 이제 사랑하는 법을 아는 우리가 사랑을 행할 때입니다.
[오늘의기도]
사랑의 하나님, 죄인을 사랑하사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을 우리도 실천할 수 있도록 믿음 주소서. 아멘.
하나님 자녀가 되는 증거
[본문말씀]
요한일서 3: 1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 18)
[묵상내용]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이웃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8절)”고 말합니다. 삶 속에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의 척도는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6절).”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15절)”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없는 자는 살인자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공동체를 향하여 오늘도 말씀하시는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 우리와 함께하심,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은 이 사랑은, 우리 안에 경험된 사랑입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알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동정할 줄 모른다면,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구제활동은 초대기독교의 커다란 특징이었습니다. 서로의 재산을 내어놓고, 함께 먹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반응마저 결여된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지만 사랑은 말로써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사랑은 행위가 동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며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기도]
주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아, 형제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진실한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주소서. 아멘.
캠벨 Josephine P. Cambell, 1852-1920, 미남감리회
[묵상내용]
조세핀 캠벨은 일찍이 목사였던 캠벨과 결혼했으나, 1880년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과의 사별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이어서 자신의 두 자녀까지 병으로 잃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녀에게 믿음으로 슬픔을 딛고 자신의 삶에 아름다운 승리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여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선교사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조세핀 캠벨은 시카고에서 간호학교와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선교사가 되었고, 상해에서 10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캠벨은 미남감리교회에서 한국에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때 그녀는 한국 땅을 주께서 지적하신 ‘땅끝’으로 믿게 됩니다. 한국 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그녀는 결국 한국에 온 미국 남감리회 최초 여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캠벨 선교사는 1897년 자신과 중국에서 함께 있었던 중국인 양녀(Dora Yui)를 데리고 내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여성을 위한 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녀들의 교육의 현장이 오늘의 배화여자고등학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배화학당의 창설은 그녀가 한국에 남긴 흔적의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1900년 4월 15일 부활주일에 캠벨은 배화학당 기도실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종교교회와 자교교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세브란스 병원의 여사감으로 봉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그녀는 1918년 안식년으로 귀국하였다가 병을 얻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9년 8월 재차 내한하였고, 결국 1920년 11월 12일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습니다.
한국의 여성교육과 교회설립에 혼신을 다했던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조선에서 헌신하였으니 죽어도 조선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녀가 가족을 잃은 아픔을 딛고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며 그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면서 보여준 아름다운 삶은, 우리가 흠모하며 우리 삶에 간직해야 할 흔적일 것입니다.
진리의 영과 거짓의 영
[본문말씀]
요한일서 4: 1∼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 6)
[묵상내용]
우리는 실로 위험하고 혼미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미혹하는 영들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사는 성도들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1절)” 하신 말씀대로 명심하여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심을 믿어야 합니다(2절). 성자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셔서 그의 구속 안에서 세상을 하나님과 연합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안에서 세상은 하나님과 화목케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참 사람’이셨다는 사실을 부인해버리면,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것이요, 우리의 구원이 무너지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바른 지식과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통해, 어두운 영의 역사, 미혹의 영인 마귀의 역사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사도적 복음) 위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보았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태초부터 있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로고스)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에게 증거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이 사도들의 증거를 듣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압니다. 사도들이 증거하지 않은 복음은 거짓 그리스도요, 적 그리스도입니다(3절).
세상에 속한 도덕적 교훈과 윤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언될 때 우리는 거기에 미혹되기 매우 쉽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에 속한 자는 사도들의 증거를 따라 그리스도를 선언하고 가르칩니다. 성경 안에서 참다운 분별력을 키워가는 것이 미혹의 영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믿음을 굳게 하고, 어둠의 역사를 시험하여 분별하며, 진리 안에 그리고 사도적 증거 위에 굳게 서서 능히 승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주여, 우리에게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의 영을 허락하소서. 그래서 타락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만 따르게 하소서. 아멘.
사랑이신 하나님
[본문말씀]
요한일서 4: 7∼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 7∼8)
[묵상내용]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필연적으로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할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은 사랑의 상실에 있습니다. 사랑 없는 가정, 사랑 없는 교회, 사랑 없이 하는 일…. 사랑이 없으면 사회도, 국가도, 가정도, 교회도 전쟁터가 됩니다. 사랑의 기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사랑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이자 표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곧 형제사랑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거할 수 없습니다. 자녀들의 싸움과 시기는 부모의 마음을 슬프게 함같이, 사람들 사이의 불화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교회 안의 싸움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요 믿음의 배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충 좋아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희생적입니다. 이타적입니다. 우리는 오직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으로 사는 성도의 삶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 사랑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사랑을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서로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십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오늘의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가 하나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안에 사랑으로 거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알게 하시고 그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나라를 만들어가게 하소서. 아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
12)
[그림QT] 십자가
묵상
마이크
[묵상내용]
생명이 있다는 것, 즉 살아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큰 고래라도 죽었으면 물살에 이리저리 밀려다니지만, 작은
송사리라도 살았으면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살아있으되 참 생명을 가지고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숨쉬고 있다고,
건강하다고, 참 생명을 가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12절).”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이 있을 때 참으로 살아있는 자입니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안에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고, 그
바깥에 있으면 죽은 것입니다. 80년, 100년 사는 세상의 유한한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이 있어야 참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영원한 생명(영생)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두 생명에 대한 말씀들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만드시고, 생명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고, 끝내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시고 그 생명이 점점 커져서 전파되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오늘 우리에게까지 그 생명이
전해온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 10).”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샘’이십니다. 우리는 생명의 샘이신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받아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니 말을 더듬던 모세가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니 무식쟁이 어부
시몬이 수천 명을 회개시키는 대사도 베드로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니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던 사울도 변해서 위대한 사도가 됩니다.
하나님께 쓸모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소중한 생명들입니다. 이 땅에서 높고 낮음, 많이 배우고 못 배움은 사람들이
만든 잣대일 뿐입니다. 사장님도, 교수님도, 대통령도, 종교지도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똑같이 잃은 양 한 마리, 돌아온 탕자, 간음한
여인, 죄 많은 세리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가득한 하루, 귀한 열매 가득 맺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주님! 오늘 내 안에, 이 제단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가득하게 하소서. 숨만 쉬지 않게 하시고 살아 움직이며 약동하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경륜과 약속이 삶 속에서 이뤄지는 살아있는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 14∼15)
[그림QT] 십자가
묵상
종
[묵상내용]
성도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 없는 성도의 삶은 군인이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다 할지라도 응답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 ‘그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가 무엇인지, 그래서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오직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기도하고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고 먼저 그 나라와 그분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마
6: 33), 하나님께서 기쁘게 들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참된
신을 찾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밤새 간구했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썬다야, 내가 너를 구원하러 왔다. 내가 곧
길이니라.” 썬다는 그 밤에 신령과 진정으로 간절히 부르짖었기에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간절히 부르짖읍시다.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드리도록 합시다. 그러한 기도를 하나님은 분명히
들으십니다(사 58: 9).
셋째로, 경건한 삶을 살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주님 앞에서 깨끗하신지요? 그리하여 사랑받을 만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날마다의 삶 전체를 통해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해야 합니다(시 4: 5). 그러할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는 자로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기도를 돌아보고 부디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 먼저 여쭙는 기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삶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가 오직 주님만 믿고 기도하게 하소서. 신령과 진정으로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하소서. 경건한 삶으로
기도드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려 응답받게 하여주소서. 아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이 1: 3∼4)
[그림QT] 십자가
묵상
접속
[묵상내용]
우리는 사회에서 어떠한 지위를 얻게 되면 반드시 그 지위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지위는, 우리 주님이 피값으로 사신 대가로 얻은 것이며 그 어느 것보다도 값지고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의 많은 책임 중에서도 특히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져야 할 책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살펴봄으로써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로, 진리가 되시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란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 상태에 있습니까? 진리가 되시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진리가 무언지
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실행하십시다. 그리고 그 순종의 삶을 지속하십시다. 그것이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다운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진리의 근원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진리가 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의 모범을 보이셨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해야 합니다.
셋째로, 진리 외의 거짓 교훈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거짓
교훈을 말하는 자들이 더 많이 생겨납니다. 요한은 이들을 가리켜 ‘적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7절). 그들은 교묘하게 접근해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주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바로 분별해내고, 그들의 잘못된 교훈과 가르침에 대해 삼가며(8절) 철저히 물리침으로써 우리가 가진
그리스도의 진리를 온전히 지켜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미혹케 하는 자들을 잘 분별하여 삼가하십시다. 그러할 때
우리들은 진리의 길에서 낙오되지 않고 진리의 삶을 바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기도]
사랑의 하나님!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 진리이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세상의 거짓된 교훈들을 삼가고 온전히 그리스도의 진리만을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삼 1: 11)
[그림QT] 십자가
묵상
전당
[묵상내용]
초대교회 시대, 교회 안에는 나이든 남녀와 젊은 남녀 그리고 주인과 종 등 다양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교훈과 양육의 성격이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특히 그들 모두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교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한 일을 실천하라는
것으로서, 각각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11절). 그 처한 위치가 다르고, 지위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다 할지라도, 똑같은 부르심을 받았기에(고전 7: 21∼22) 모든 성도들이 선한 일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예외 없이 똑같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살아있는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참된 믿음은 그 믿음의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믿음의 행위를 통해 믿음이 더욱 온전케 되고 바른 믿음으로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성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일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살아있는 믿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각 부분이요 지체입니다(고전 12: 27). 그러므로
주 안에서 빛의 자녀들이요 의로운 백성이 된 우리 성도들이 빛의 자녀들답게 또 의로운 백성답게 살지 못할 때에는,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선한 일을 실천하는 데 있어 철저한 책임감과 조심성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각 지체인 우리가 선한 일을 실천할
때에는 긍정적이고 유익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실천해야 하는 최종적이고도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행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벅찬 일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한 자답게 항상
감사하며 선한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빛이 되시는 하나님! 살아있는 믿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교회에 덕을 세우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케 하소서. 이제부터라도 선한 일을 실천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1901년에 로스(J. B. Ross M.D)라는 의사는 원산으로 부임하게 되자 전도사업에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철원
지경터(地鏡岱)로 가서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 교회가 바로 강원도에서의 첫 번째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이후 하디 선교사가 이
지경터에서 10리가량 떨어져있는 김화읍 학사리 새술막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연이어 세워지고 복음이 전파되는 축복을 받았던
원산지역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하였던 또 한 명의 선교사가 있습니다. 바로 쿠퍼라는 여성선교사입니다.
쿠퍼가 원산지역에 부임하게
된 연유는 이러합니다. 하디 선교사는 1903년에 소년매일학교(Boy’s Day School)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학교는 후에 많은 일꾼을
양성한 광명보통학교로 성장하였습니다. 또 1906년에는 방을 한 칸 마련하고 ‘반렬반’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성경공부도 시작했는데, 이 학교는 후일
발전하여 보혜성경학원이라는 곳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보혜성경학원에서 한국교회의 뿌리가 되는 많은 전도부인이 양성된 것입니다. 이곳의 교장으로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이가 바로 쿠퍼(S. K. Cooper, 巨布計) 선교사인 것입니다.
쿠퍼는 이렇게 미남감리교 선교사로
원산선교부에 부임하여 원산 보혜여자관 관장이 되어 특별히 여성을 위한 선교, 교육, 계몽사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로스, 하디와 달리 여성이었던
그녀는 원산의 여성들을 위해 특별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쿠퍼는 여성을 위해 영어, 재봉, 요리 등의 강의를 개설하였습니다. 또한
탁아소를 설치하는 등 여성을 위한 교육환경과 생활의 질적 향성을 위한 지평을 열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1940년
일본에 의해 강제출국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다시 돌아온 그녀는 또 광복 후인 1950년에 6•25 사변을 당하여 일본으로 퇴거하는
등 한국에서 많은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재차 내한하여 선교활동을 벌이며 1957년 선교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할 때까지 원산지방
선교와 여성교육을 위한 자신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이런 그녀는 후대 사람들에 의해 ‘원산선교의 어머니’라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골 1: 3∼4)
[그림QT] 십자가
묵상
하나
[묵상내용]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의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향한 극진한 칭찬과, 바울이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기도입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복음에 근거하여 믿음과 사랑과 하늘의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로새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욱 바로 깨닫고 주께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했습니다. 성도의 모범 된 골로새교회의 삶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고 이어가야 할 모습입니다.
참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통치하시는 세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면, 모든 일의 해석기준과 분별의 기준이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일구고 가꾸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 7).”
사노라면
위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실패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되면 포기하거나 낙심하여 환난에 묻혀버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분별하여 믿음과 사랑과 하늘의 소망으로 새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약동을 부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대적이 쳐들어오는 그 순간에 ‘저들을 이길 수 있는 병력이나 무기와 요새지가
어떻게 구축되어있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 13).”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 19∼20)
[그림QT] 십자가
묵상
거울
[묵상내용]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은 내면에 있는 자기의식의 지배를 받습니다. 자신을 고귀한 존재로 인식하면 고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을 무용한 존재로 생각하면 그 사고도 행동도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신분이 이미 변했는데도 그 생각과 행동이
그대로인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의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부터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에 합당한 사고와 행동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신분으로 사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를
이루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 죽음의 희생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온 인류는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본문의 바울도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의 의식을 갖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고 가르치고 지킬 수 있게 하는 사역을
실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 25).”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신앙적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복음전파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가는 교회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역을 잘 감당하면 이 땅에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다해 수고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신다는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의 생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 속에 늘 깨우쳐주소서. 아멘.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 25)
[그림QT] 십자가
묵상
양육
[묵상내용]
바울은 자기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첫째, 바울이 하나님에 의해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만유의 주인이신 분이 자신의 교회를 위해
일꾼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친히 일을 시키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일 맡기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교회의 일꾼들은 이런 소명감으로 일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꾼은 소명감에 사로잡힌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소명감이 있을 때 사람들의 멸시를 이겨냅니다. 어떤 환난과 박해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사역이기 때문에 영광입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 25).”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경륜’이란 말은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일꾼의 일은 하나님의 계획이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지고 도달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이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지고 이해되고 믿어지게 되기까지
그는 이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셋째, 교회의 일꾼은 영혼을 살리는 직분이기 때문에 영광스럽습니다. 교회 일꾼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써 사람들을 살립니다. 교회의 일꾼은 복음을 전함으로써 사람들을 살려냅니다. 모든 인류는 죄와 사망 아래 있습니다. 저주와 고통이
하나님을 떠난 모든 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저주와 형벌을 피할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입니다. 이 복음만이 온갖 저주에서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자기자신과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내는 교회의 일꾼의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매일매일의 삶 속에 교회 일꾼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최근 몇 년 사이에 『다빈치코드』, 『유다복음서』, 『도올 김용옥의 요한복음 강의』 등, 예수님을 왜곡된 시각으로 조명하는 시도들이 있어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교회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왜곡된 사실은 진리가 아닙니다. 거짓된 사실은 오래 가지를 않습니다. 그에 반해 성경은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한결같이 예수님의 구원의 완전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구원과 온 인류의 역사를 온전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단과 거짓 교사들이 난무하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거나 인성을 부정하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완전성을 제한하는 가르침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8절).” 사도 바울은 혼란스런 상황과 분쟁을 일으키는 이단이나 거짓 가르침에 대하여 단호하게 거부하고 경계하면서, 성도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흔들림이 없는 바른 신앙에 서있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온 우주의 창조주요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온 우주만물의 역사를 주관하셨고, 완전한 구원의 경륜을 계획하셨고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으셨고 성자 하나님으로서 창조와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셨습니다.
둘째, 죄를 용서하시고 사하여주시는 구속주이십니다. 어떤 피조물도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에 대하여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부여해주십니다.
셋째, 예수님만이 영원토록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어떤 피조물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천사, 대제사장, 종교적 제의와 형식, 인간의 유전과 전통도 존귀와 영광을 받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이 영원토록 찬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오늘의기도]
창조자와 구원자가 되신 하나님! 죄와 사망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대속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요 생명의 주인이심을 믿고,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13: 23∼29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삼하 13: 28)
[묵상내용]
인간에게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이며 이기심입니다.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타락 사건에서도, 인간의 욕심이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하게 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뱀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같이 될 것이라고 하와를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그 욕심은 결국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 죽음이 오고 말았습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처럼 사망이 인간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 15).” 죄는 자라납니다. 바늘도둑은 소도둑이 되고,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그 싹이 나왔을 때 바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압살롬이 배다른 형제인 암논을 죽이는 비극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어머니가 달랐지만 둘다 다윗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형제가 형제를 죽인 것입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것은, 압살롬의 여동생인 다말을 암논이 성폭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그 사건에 대해서 2년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22절).” 그런데 2년 후 동생의 원통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암논을 살해했던 것입니다.
억울한 일이나 원통한 일을 당할 때, 분풀이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 즉 죄의 소원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소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가인이 죄의 소원을 잘 다스렸다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죄와 상관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설사 눈을 빼어버릴지언정, 손을 찍어버릴지언정 눈으로든 손으로든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죄를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연약한 저희를 붙잡아주시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