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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제 목 : |
레이놀즈 William Davis Reynolds, 李訥瑞, 1867-1951, 미남장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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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날 짜 : 2008-09-07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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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수 : 7,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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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내용]
1867년 12월 11일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출생한 레이놀즈는, 햄덴 시드니대학 재학 중 남달리 어학에 재능을 보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이 달란트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선교를 꿈꾸게 되었고, 결국 1892년 11월 3일 한국선교사로 내한하게 되었습니다. 레이놀즈는 이렇게 미국 남장로회가 선교사로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레이놀즈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하여 첫 번째 활동으로서 미남장로회 선교회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1893년 1월에는 미북장로회와 연합하여 공의회를 조직하였고, 그곳의 초대 의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때 공의회의 선교지 중복과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선교구역의 예양협정(禮讓協定)을 체결하였습니다. 전도 대상자는 부녀자와 청소년을 우선하였으며, 성경과 모든 문서는 한글로 사용하기로 하는 등 한국선교의 개척을 위해 그 기틀을 마련해나가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그는 1895년부터 ‘성서번역위원회’의 미남장로회 대표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896년에는 전주에 선교본부를 설치하면서, 1887년 여름 전주에서 다섯 사람에게 최초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교회건립을 통해 레이놀즈 선교사는 호남지방 선교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그가 가지고 있었던 어학의 재능으로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는 언어학자와 성서번역가로 활동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게일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1895-1938) 성서번역에 종사하면서 1900년 신약성서를 완역하는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0년 구약성서 완역에도 독보적 구실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가진 달란트로 몇 배의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원했던 그는, 1911년 독노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1917년부터는 평양신학교 교수와 「신학지남(神學指南)」 편집인 등으로 활동하면서, 폭넓게 헌신하였습니다. 1937년 은퇴하기 전까지 45년이라는 시간을 한국에 머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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