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의 성격적 특징 중 하나가 ‘조급함'입니다. 쉽게 결론을 찾아내야 하고 모든 일은 빨리빨리 진행돼야 합니다. 그 과정에 겪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차근차근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런 우리의 습관이 우리의 형편에서는 불가피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 정보화사회를 이루는 과정에서는 이런 우리의 조급함이 오히려 좋은 성과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경제적인 부흥을 이룬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시작을 하면 얼른 끝을 봐야 하는 우리의 성격은, 교회의 부흥을 이룩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복에 대해 말합니다.
다윗은 결국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갖은 박해와 훼방을 견디어 끝내 왕이 되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에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온갖 시련이 있었으나 다윗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종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리는 것은 종의 기본적인 사명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때를 기다려 왕의 자리에 이른 다윗의 인내와 정성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는 스스로의 재능이나 욕망을 따라 행함으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위에 올랐음을 보여줍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가니라(10절).”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강성해진다는 사실이 뜻하는 바를 깨달아 알았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12절).” 그는 하나님의 뜻으로 왕이 되었으니, 그가 수고해야 할 일은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하심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우리의 삶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다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사무엘하 5: 22∼6: 11
그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삼하 5: 24)
[묵상내용]
다윗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결과였습니다. 그가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왕이 된 다음에 블레셋의 침략을 받았을 때 여호와께서 대신 나가서 그들을 물리치는 역사를 보여주신 것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무한정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면서(삼하 5: 25)’ 때를 기다렸습니다. 삶이 형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다윗의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형통할 것 같았던 다윗에게도 시련이 닥쳐옵니다. 오랫동안 기럇여아림에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던 중, 그의 의욕적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운반책임자였던 웃사가 언약궤를 만져서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더 이상 의욕을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진행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무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인이 언약궤를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효율적인 방법이라도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궤를 맡기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반드시 신앙적인 행위여야 합니다. 신앙은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의 문제, 능률적이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거룩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과정을 밟아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땅에 세우는 일을 위하여 다윗은 마침내 가장 중요한 일을 과감하게 시행합니다. 블레셋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는 등의 일들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다윗의 지도력도 함께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을 기회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전혀 허락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만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생명과 호흡을 모든 만물에게 친히 주시는 주님!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주의 영광만을 나타내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아멘.
[묵상내용]
황해도 재령에서 1906년부터 1939년까지 사역하다가 은퇴하고 미국으로 귀국했던 윌리엄 헌트(William. B. Hunt, 한위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재령의 여름성경학교는 초창기 1907년에 몇십 명에 불과했던 참가자들이 1930년을 전후해서 2천여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그와 더불어 재령 동부교회, 서부교회 등이 건축되었습니다. 큰 업적을 남겼던 윌리엄 헌트 선교사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바로 ‘한부선’ 선교사로 불리우는 그의 아들은 우리에게 더욱 더 깊은 감동을 줍니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한부선은 평양에서 출생하여 재령과 평양을 오가며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교육을 위해 귀국해서 프린스턴신학교에 다녔다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한국선교사로 내한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부선이 선교사로서 활동하던 때는 아버지의 시대보다도 더욱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던 한부선 선교사는 만주의 하얼빈 감옥에서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봉천노회에서 제명되는 일도 겪고, 계속하여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만주에서 옥에 갇히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사참배반대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였습니다. 결국 일제로부터의 해방 후, 신사참배의 반대자였던 한부선 선교사의 그 정신을 잇는 고려파 교회와 고려신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칼빈신학교와 복음병원에도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6·25 전쟁 후에 그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 산재한 고아들을 수도 없이 방문하며 도왔습니다. 헌트의 물질적 봉사는 결코 그가 부유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보잘것없는 시골의 작은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검소한 삶을 살면서도 아낌없이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한부선 선교사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였던 정신은 미북장로교 선교사들에게도 강하게 계승되었고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자 주기철 목사에게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시대의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던 한부선 선교사! 그가 보여준 결단력있는 행동 그리고 확고부동한 신념과 정신은 지금도 분명히 유효합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할 우리에게, 순종의 대상과 선택의 길은 항상 동일합니다. 신사참배강요가 지향하고 있었던 천황과 싸우며 하나님을 향해 철저히 순종하였던 한부선 선교사와 같이, 우리는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복음을 제시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하 7: 1∼17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 2, 16)
[묵상내용]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고 궁에 평안히 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선지자 나단을 불러, 그 뜻을 밝혔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그러자 나단도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하고 찬성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에게 놀라운 약속을 해주셨고, 나단은 그 내용을 다윗에게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집을 지어주기를 요구하신 적이 없는 분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5∼7절).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8∼9절).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주할 땅을 주시고, 그들을 지키시고,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0∼11절).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게 되리라는 것을 약속하시고, 또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13∼16절).
우리들은 누구나 다윗과 같은 축복의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다윗에게 그러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2절).”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사랑을 누리고 있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도리를 다 하고 있지 못합니다. 단, 하나님이 백향목 집을 우너하시는 먼저 여쭈어본 뒤에 해드려야 합니다(7절).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다윗과 같은 마음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마음을 기쁘게 여기시며 더욱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도 다윗과 같은 마음을 품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하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게 하여주소서. 아멘.
사무엘하 7: 18∼29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 7: 29)
[묵상내용]
다윗은 나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실 놀라운 복의 약속을 듣고, 감격합니다. 그리고는 그 언약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그토록 놀라운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18절)” 다윗은 이어서 자신이 이미 받은 은총도 크거늘, 더 큰 장래의 일까지도 약속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다윗은 다시 고백합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20∼21절).” 과연 하나님은 다윗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아시는 분이시며, 만사를 당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아시는 분이시며, 만사를 그분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심을 망각할 때 일어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살해할 때가 그런 때였습니다.
다윗은 이어서,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유일하심을 고백하고(22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주의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음을 찬양합니다. 과연 다윗의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위대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 바로 만민의 하나님이요, 우리 모두가 그의 백성임을 밝혀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지난날들의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이어서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기도드립니다(25∼29절). 다윗은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29절)”하고 그의 기도를 마무리합니다만, 그보다 먼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29절)”하고 기도합니다.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복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중요합니다. ‘주 앞에 영원히 거하는 것’ 그 자체가 복이며, 다른 모든 복의 근원입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늘 주 앞에 있음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예비하신 축복을 잃지 않게 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9: 1∼13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삼하 9: 7)
[묵상내용]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후, 백성들로부터 사울 왕보다 더 큰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그러한 민심에 불안해져서 다윗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남다른 신뢰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또한 요나단도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다윗을 사랑했습니다(삼상 20: 17).
그만큼 다윗을 사랑한 요나단이었기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울 앞에서 다윗을 두둔합니다(삼상 19: 4∼5, 20: 32∼33). 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자, 다윗이 무사히 도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삼상 20: 35∼42). 요나단은 다윗과 더불어 눈물의 이별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삼상 20: 42).”
다윗을 핍박하던 사울이 요나단을 비롯한 왕자들과 더불어 길보아 산에서 벌인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후, 다윗은 먼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습니다. 한동안 사울의 장수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다윗에게 대적하였으나, 마침내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죽게 되자, 다윗은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다윗은 그러한 상황에서 옛 친구 요나단과의 약속을 다시 생각해내고,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그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승리하고 성공한 후에는, 옛날 어려운 때의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옛 친구에게서 받았던 은혜, 그와 맺었던 오래된 약속을 기억하고, 충실하게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사람들에게나 하나님께 약속하거나 서원하고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이 시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들이 어려울 때뿐 아니라, 성공하고 승리한 때에도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받은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11: 1∼27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 11: 27)
[묵상내용]
다윗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울의 질투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이방과의 많은 전쟁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윗의 실패는 어려움 중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편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 때 다윗에게 실패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의 실패는 우리의 믿음생활에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부하들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무료해하던 어느 저녁, 다윗은 왕궁 지붕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는데 심히 아름다웠습니다. 다윗은 사자를 보내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삶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면 충분했습니다. 다윗은 제동장치 없는 기관차처럼 파멸을 향해서 돌진했습니다. 밧세바를 데려다가 동침하였고 그 결과 여인이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교묘한 계략을 생각해냅니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로부터 데려다가 아내와 동침하게 하려 하지만, 우리아는 충직한 군인이어서 모두가 전쟁터에서 고생하고 있는 때에 자신만 먹고 마시고 처와 동침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얼마나 칭찬받아야 할 일입니까? 몇 번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다윗은 악한 계교를 꾸며서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듭니다.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마지막 열매인 ‘절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 22∼23).” 다윗이 어떤 부분에서든지 ‘절제’할 수 있었다면, 그의 삶에 그처럼 가장 큰 오점을 남기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실패를 보면서 ‘절제’를 배웁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더 진행되어서는 안 되는 욕망 앞에 설 때, ‘절제’하여 더 큰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주님!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인 ‘절제’를 허락하셔서, 멈춰야 될 때를 알게 하여주소서. 아멘
사무엘하 12: 1∼14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삼하 12: 7)
[묵상내용]
다윗 왕은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밧세바와의 잘못된 만남뿐만 아니라 부하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 모든 일들도, 자신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신도 속히 잊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1∼4절).”
나단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던 다윗은 크게 노하여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윗을 보면서 갑자기 나단이 말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7절).” 이 말씀 앞에서 다윗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다윗과 같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눈감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눈감아주지 않고 책망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 3∼5).”
나에게 형제의 죄가 커 보이고 나에게 자매의 잘못이 커 보일 때, “당신이 그 사람이라”는 나단 선지자의 음성이 우리를 늘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기도]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우리 안에 남을 향한 비판과 판단의 목소리가 커질 때 정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 “당신이 그 사람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12: 15∼31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 12: 23)
[묵상내용]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죄는 다윗이 범하였지만 죄의 결과는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에게 나타났습니다.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아마 다윗은 “내가 당할 죄의 결과가 왜 아이에게 나타나느냐”고 한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아이를 위하여 금식하여 간구하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걱정하여 음식을 좀 들라고 하여도 다윗은 더불어 먹지 아니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7일 만에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신하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에도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는데, 이제 아이가 죽었으니 왕의 상심이 더 커서, 왕이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근심하였습니다(18절). 신하들이 이처럼 왕에게 말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릴 때, 다윗은 신하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자신에게 나타난 일, 곧 아이가 죽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여서 꼭 무슨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분위기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하들의 걱정과는 달리 다윗은 오히려 땅에서 일어나서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베풀게 하고 먹었습니다. 신복들이 왕에게 와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다윗이 대답합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22∼23절).”
다윗을 통해 우리는, 믿음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는 것임을 배웁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 13∼14).” 우리 모두가 뒤에 있었던 상처에 연연하지 말고, 앞에 있는 소망을 향해 달려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기도]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 과거에 연연하지 않게 하시고, 희망찬 앞날을 향해 달음질하는 믿음과 소망을 주소서. 아멘.
[묵상내용]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렌 선교사는 본래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중국 해안가에 정착하여 의료선교사역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해안가에는 이미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정착하여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곳도 그에게 마땅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알렌 선교사는 8개월 동안 상해와 남경 일대를 헤매다가, 조선의 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조선에 깊은 관심을 갖고, 미국선교부에 편지를 씁니다. “나의 조선 입국을 허락해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단신으로라도 들어가겠습니다.” 알렌은 1884년 9월 20일 드디어 제물포 항구에 도착하여 한국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알렌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한 미국공사관의 공의라는 직분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의보다는 왕실의 시의가 되면 더 좋은 선교를 펼칠 수 있음을 알게 된 알렌은, 고관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기도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때가 왔습니다. 그가 조선 땅에 온 지 2개월이 막 넘은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으로 민영익이 자객의 칼에 맞아 목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14명이나 되는 한의사들이 전전긍긍 손을 쓰고 있었으나, 출혈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우왕좌왕하기만 하였습니다. 알렌은 의료기기를 다루면서 선교의 기회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민영익을 치료하였습니다. 그 결과 민영익은 소생하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알렌 선교사는 조정의 신임을 받게 되어 왕실의 시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조선선교의 기틀이 마련됩니다. 민영익은 생명의 은인인 알렌 선교사에게 감사하여 십만 냥을 주었고, 알렌은 이 돈을 기초로 병원을 마련하였는데 이 병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입니다. 그 후 이 병원은 제중원이라고 개명하였고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처음 조선에 들어온 언더우드 선교사도 알렌의 도움으로 알렌의 집에 거하면서 조선선교를 위해 준비할 수 있었으며, 초창기 조선에 들어온 대부분의 선교사가 알렌의 도움으로 조선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선교의 기회가 올 것을 기대하며 믿고 기도로 준비하던 알렌을 통해 조선의 선교는 시작된 것입니다.
사무엘하 13: 23∼29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삼하 13: 28)
[묵상내용]
인간에게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이며 이기심입니다.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타락 사건에서도, 인간의 욕심이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하게 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뱀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같이 될 것이라고 하와를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그 욕심은 결국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 죽음이 오고 말았습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처럼 사망이 인간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 15).” 죄는 자라납니다. 바늘도둑은 소도둑이 되고,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그 싹이 나왔을 때 바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압살롬이 배다른 형제인 암논을 죽이는 비극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어머니가 달랐지만 둘다 다윗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형제가 형제를 죽인 것입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것은, 압살롬의 여동생인 다말을 암논이 성폭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그 사건에 대해서 2년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22절).” 그런데 2년 후 동생의 원통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암논을 살해했던 것입니다.
억울한 일이나 원통한 일을 당할 때, 분풀이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 즉 죄의 소원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소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가인이 죄의 소원을 잘 다스렸다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죄와 상관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설사 눈을 빼어버릴지언정, 손을 찍어버릴지언정 눈으로든 손으로든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죄를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연약한 저희를 붙잡아주시기 원합니다. 아멘.
사무엘하 14: 1∼20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삼하 14: 14)
[묵상내용]
예수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 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peacemaker)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도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 때문에 단절되어있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평이 되셔서 가로막힌 담을 허무시고 둘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었던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확실한 길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 18).” 우리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해야 합니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압살롬은 이복형제 암논을 죽이고 그술로 도망하였습니다. 아버지 다윗 왕은 압살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암논을 생각하여 슬퍼하였습니다. 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러갔습니다. 암논의 죽음은 점점 잊혀지게 되었고 다윗 왕은 암논을 죽인 압살롬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요압은 한 지혜로운 여인(드고아에서 온 여자)에게 할 말을 일러주어 다윗을 설득하게 합니다. 이에 다윗은 압살롬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요압과 여인이 아버지 다윗과 아들 압살롬 사이에 다리를 놓았던 것입니다. 매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에 중보가 되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사람 사이에서 다리가 되고 중매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세상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늘의기도]
평화를 위하여 외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인 저희들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소서. 아멘.
사무엘하 14: 21∼33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삼하 14: 30)
[묵상내용]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할 것을,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들어 가르쳐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아무런 힘이 없는 과부가 자주 찾아와서 소원을 말할 때에, 결국은 귀찮아서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속히 응답하여주십니다. 그것도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주십니다.
아버지 다윗 왕을 피하여 그술에 3년 동안 피신해있던 압살롬은 요압의 지혜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압살롬은 2년 동안이나 아버지 다윗 왕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사람을 보내어 요압에게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요압에게 아버지 다윗을 만나 자기에 대해 잘 말해달라는 요청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여러 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압살롬은 종들을 시켜서 자기 소유의 밭 곁에 있는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압이 압살롬을 찾아왔습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예루살렘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술에 머물러있는 것이 더 낫겠다고 요압에게 분통을 터뜨립니다. 결국 요압이 다시 다윗 왕에게 나아가 압살롬을 만나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압살롬은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복권되게 됩니다.
압살롬은 응답이 있을 때까지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허락의 응답, 허락하지 않는 응답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응답 세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즉각적인 응답이 있지만, 때로는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응답도 있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밤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천사가 축복하기까지 천사를 결단코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천사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진리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강청하는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의기도]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기까지 실망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게 하여주소서. 아멘.
사무엘하 15: 1∼18
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삼하 15: 9)
[묵상내용]
한 어머니가 남매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어린 시절의 가난한 생활을 못 견뎌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강변에서 여관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집을 나간 아들을 잊을 수 없었던 그들의 소원은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이 행복이라 생각하고,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모녀는 투숙객에게 수면제를 먹여 죽인 뒤, 돈을 빼앗고는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집을 나갔던 아들이 성공하여 마을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깜짝 놀라게 해줄 마음으로 신분을 감춘 채 여관에 투숙합니다. 모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돈 많은 부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모녀는 그날 밤 그에게 수면제를 먹여 돈을 빼앗고 그를 강물에 던져버리고 맙니다.
시체를 처리한 뒤 그 청년의 짐을 뒤지던 모녀는, 그 안에서 나온 신분증을 보고서야 자신들이 살해한 남자가 바로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이며 오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절망한 어머니는 아들을 던져버렸던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그 모습을 본 딸도 자살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오해』라는 작품의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의 19명의 아들 중 권좌에 가장 근접해진 압살롬은 호위병을 세우고 민심을 얻기 위한 술책으로 헤브론을 통치할 수 있도록 승낙을 받습니다. 그는 실제의 속셈(반란)을 숨기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들먹이며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밖에 나가서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의 추종자를 모으며, 아버지 다윗에 대한 반란을 꾀합니다. 왕이 아들에게 쫓기는 비극이 시작되지만, 후에 압살롬의 반란은 결국 다윗의 승리로 끝납니다.
인간의 지혜와 탐욕을 앞세운 집권욕구는 반드시 무너지고 맙니다. 탐욕의 끝은 행복과 기쁨이 아닌 불행과 죽음일 뿐입니다. 세상의 헛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의 자녀로 살아갑시다.
[오늘의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늘 후회하면서도 탐욕이라는 것을 놓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함을 고백합니다. 헛된 욕심을 좇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사무엘하 15: 19∼37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삼하 15: 25)
[묵상내용]
옛날 중국의 순 임금 때의 일입니다. 임금은 어느 날 밑 빠진 독에 우물물을 길어 붓도록 모든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처음에는 마지못해 하는 척하더니 하나둘 임금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한 신하는 하루종일 우물에서 물을 길어 밑 빠진 독에다 채웠습니다. 물을 붓자마자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면서도 이 충성스러운 신하는 임금의 명령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급기야 우물물이 바닥났습니다. 이 신하가 우물바닥에서 반짝거리는 황금 덩어리 하나를 발견해서 임금님께 가지고 갔더니 임금님은 기뻐하면서 말했습니다. “이 황금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미리 넣어놓은 선물이니 네가 갖도록 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삼하 15: 25∼26).”
아들(압살롬)에게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지 않습니다. 감람산을 맨발로 걸어 도망쳐야 하는 굴욕을 겪으면서도, 만약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주어진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철저히 복종하며 생명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각오를 합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만나고 그렇지 못한 일도 만나게 됩니다. 높아질 때가 있으면 낮아질 때가 있고, 건강할 때가 있나 싶으면 약해질 때가 있으며, 부유할 때가 있고 가난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삶의 굴곡은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높아지고 강해지며 부유할 때를 ‘기회’라 하고 그 반대의 경우를 ‘위기’라 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회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위기와 기회는 언제나 함께 공존합니다.
다윗은 수많은 절망의 순간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의 확신과 온전한 순종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실한 자녀로 살아갑시다.
[오늘의기도]
선한 목자 되시어 늘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절망을 희망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자녀 되게 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16: 1∼23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삼하 16: 11)
[묵상내용]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라비아 종마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습니다. 한 예언자가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100마리의 말을 찾아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먹을 것은 그곳에 얼마든지 있었으나 마실 물은 한 방울도 없었습니다. 그는 말들이 목말라 미칠 지경이 되도록 우리에 가두었다가 갑자기 말 우리의 문을 열었습니다. 말들은 흐르는 시내를 향해 내달렸습니다. 말들이 거의 시냇가에 도착했을 때, 그는 뿔피리를 힘차게 불었습니다. 그러자 앞다투어 내달리던 100마리의 말 가운데 4마리가 뿔피리 신호에 멈추어 주인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이때 예언자가 말했습니다. “저 4마리의 말을 종마로 세계에서 제일 가는 말을 길러내겠다. 나는 저 말들을 아라비아 종마라고 이름하겠다.”
다윗은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11∼12절)”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 심한 굴욕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에 굴복합니다. 또한 다윗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역경 가운데서도 악을 악으로 갚는 데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다윗 자신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삼상 25: 30).
아랍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햇빛만 쏟아지는 곳은 사막이 된다.” 비가 없고 햇빛만 비추면 온 땅은 푸석푸석하고 흩날리는 모래로 가득 차 버리고, 옥토는 사막으로 바뀝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옛말이 있듯이, 우리의 삶이, 가정이, 나라가 가장 눈부시게 성장할 때는 가장 눈물이 많았던 때입니다.
힘든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숙한 신앙의 열매를 맺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기도]
어떠한 처지에서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승리하는 자 되게 하소서. 아멘.
[묵상내용]
1886년 매사추세츠 주 마운트 허먼에서 제1회 학생하령회(Summer Conference)라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미국과 캐나다 87개 대학에서 251명의 학생들이 모였는데, 무디(D. L. Moody)가 이 집회의 강사였습니다. 무디의 영향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모두 다 가자, 모두에게로(all should go and go to all)”라는 구호 아래, 많은 청년들이 감화를 받아 외국선교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게일이라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게일은 특별히 한국선교를 결심하게 되었고, 그의 모교 토론토대학 기독청년회에서 파송하는 평신도선교사가 되어 1888년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서울로 오는 길에 당시 유행하던 전영병으로 죽은 시체들이 길거리에 내버려져있는 것을 보기도 하였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이 청년에게 그런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25세의 이 청년은 교회에 가서 몇 달을 지내며 한국말을 공부했고 1890년 예수교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성서공회 전임 번역위원으로 봉사하게 되었고, 1891년 2월에는 미북장로교회 선교사 마펫과 함께 만주에까지 다녀왔습니다.
게일은 독립된 평신도 청년선교사였기에 교파적 배경이나 풍부한 재정적 후원도 없었던 고독한 선교사였고, 나중에는 그나마 있던 토론토대학 기독청년회의 선교지원비도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게일은 1891년 8월 31일 미북장로회 선교부로 전적하여 더욱 열심히 헌신할 기회를 찾았습니다.
게일은 특별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애를 썼던 선교사이며 교육가이자 저술가였습니다. 1897년 4월에는 「그리스도신문」 주간으로 시작하여 「기독신보」로 바뀔 때까지 10여 년간 주필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그는 원산에 머물면서 수필집 『한국 만록』을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경신학교와 정신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문화를 사랑한 선교사로서, 서울의 역사 『한양』을 집필하고 『의회 통용 규칙』을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1917년 5월에는 조선음악연구회를 조직해 찬송가 개편에 착수하기도 하였고, 1922년에는 『구운몽』을 영어로 번역해서 런던에서 출판하였습니다. 그의 단행본 저서는 43권에 이릅니다. 이렇게 게일은 한국문화와 문학에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사무엘하 17: 24∼29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삼하 17: 27)
[묵상내용]
친구 후새의 도움으로 압살롬의 계획을 알게 된 다윗은 요단을 건너 마하나임에 이르렀습니다. 마하나임은 요단강 동편의 성읍으로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한 곳입니다(창 32: 2).
마하나임에 이른 다윗은 여러 사람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첫째로, 암몬 족속 랍바 사람 소비는 나하스의 아들이었습니다. 나하스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다니던 시절에 다윗을 환대해준 인물입니다(삼하 10: 2). 나하스가 죽자 다윗은 조문사절을 보내 선왕 때와 같이 잘 지내려고 하였으나 그 아들 하눈은 다윗의 사절들을 심하게 모욕함으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랍바를 점령한 다윗은 암몬 족속에게 보복을 가하지 아니하고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러한 관용과 덕이, 환난에 처한 다윗에게 적절한 도움으로 돌아왔습니다.
둘째로, 로데발 사람 마길은 요단 동편에 정착한 므낫세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보호해주었던 인물입니다(삼하 9: 4).
셋째로,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는 이름으로 보아 아람족 출신인 듯합니다. 그는 길르앗의 큰 부자였고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물 동안 잘 보살펴줌으로 다윗을 감동시킨 인물입니다(삼하 19: 32). 그는 80세의 고령임에도 다윗을 잘 도왔습니다.
이들은 다윗 일행에게,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 밀과 보리와 밀가루,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자고 씻고 먹을 수 있는 물건과 양식입니다. 급히 떠나온 다윗 일행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마하나임 사람들은 다윗과 그 백성들의 형편을 잘 살펴주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고하고 목마르지 않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29절).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징계 중에서도 다윗에게 마하나임 사람들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도우십니다.
[오늘의기도]
환난 가운데서도 마하나임 사람들을 통해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18: 1∼18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삼하 18: 10)
[묵상내용]
위대한 군사 전략가 다윗은 수적으로 열세인 군대를 효율적으로 지휘하기 위해서 조직을 재편하고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를 장군으로 세웠습니다. 다윗의 백성들은 모두가 충성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친히 전장에 나서려는 다윗을 말리며 왕을 보호했습니다.
압살롬의 군대와 다윗의 군대가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웠습니다. 용맹한 다윗의 부하들이 압살롬의 군대를 상대로 크게 이겼습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2만 명이나 전사했습니다. 수풀에서 죽은 자는 더 많았습니다. 달아나던 압살롬은 그 자랑하던 머리카락(삼하 14: 26)이 상수리나무에 걸렸습니다. 노새는 지나가버리고 압살롬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필자는 요르단 북부 길르앗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사실들을 눈여겨 관찰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다가 밤을 지새우며 씨름했던 얍복강을 보았습니다. 길르앗 산비탈에서 풀을 뜯는 염소떼도 보았습니다. 압살롬이 매달려 죽었을 법한 상수리나무 숲도 세밀하게 관찰했습니다. 마하나임의 상수리나무는 우리나라의 상수리나무처럼 길쭉한 도토리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잎이 아주 작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수리나무 잎의 삼분의 일 정도로 보였습니다. 또 다른 점은 우리 상수리나무보다 키가 작았고, 그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하기보다는 옆으로 뻗어있다는 것입니다. 노새를 타고 지나가면 머리가 부딪칠 정도의 높이로 가지가 뻗었습니다.
다윗이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5절)”고 부탁했지만, 요압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충직한 부하는 다윗 왕의 부탁대로 압살롬 죽이는 일을 거부했지만, 요압은 창을 들어 상수리나무에 걸려 아직도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였습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은, 자신을 위하여 만들어둔 무덤과 비석이 예루살렘 부근, 왕의 골짜기에 있었지만 거기 묻히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하나임의 수풀 속 돌무더기에 비석도 없이 비참하게 묻혔습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헛된 욕망과 배반의 끝은 비참한 죽음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충성과 겸손으로 끝날까지 순종하게 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18: 19∼33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삼하 18: 19)
[묵상내용]
아히마아스는 제사장 사독의 아들입니다. 그는 다윗에게, 친구 후새가 전해주는 계략을 전해주어 다윗을 도운 적이 있습니다(삼하 17: 21). 그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이 죽은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겠다고 요압에게 청했습니다.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19절).”
아히마아스가 사자의 임무를 자청한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에서, 다윗의 승리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압살롬의 죽음과 반란군 진압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또 다윗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인데 압살롬이 과도하게 욕심을 부려 하나님의 종을 해하려 했기에 그를 왕의 원수로 단정하고 소식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를 아끼는 요압이 말렸습니다.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20절).”
요압의 명령을 받은 구스 사람이 전령으로 떠났지만 아히마아스는 요압에게 간청했습니다. 이번 일로는 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그는 전령이 되기를 강청하여 허락을 받고 달려갔습니다.
다윗에게 먼저 간 그의 보고는 지혜로웠습니다. 왕이 듣고 싶어하는 승전의 소식만 전하고 왕이 슬퍼할 압살롬의 소식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29절).” 이 말은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32절)”라고 보고한 구스 사람의 말보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승전의 소식을 들었지만 다윗은 슬피 울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33절)” 다윗의 징계받음은 압살롬의 죽음에서 정점에 달했습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열정의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것을 알게 하소서. 지식보다 지혜가 더 많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사무엘하 19: 1∼23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삼하 19: 7∼8)
[묵상내용]
우리는 종종 후회스런 경우를 경험합니다. 사람에겐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쉽다는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진리로 잘 순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감정을 극복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부하의 충고(忠告)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다윗에게 압살롬의 죽음은 너무나 큰 슬픔이었지요. 그래서 다윗을 좇던 백성들은 승리를 하고도 다윗의 슬픔으로 인해 패잔병처럼 가만히 성에 들어왔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계속 얼굴을 가리고 통곡함으로 개인의 감정에 빠져 왕으로서의 할 일을 놓고 있었습니다. 자기 감정에 빠져,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나 수고한 군사들에게 격려의 말 한 마디 없이 무심했던 것입니다.
이때 요압은 담대하게 왕에게 충언했습니다. 윗사람에게 충고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압이 충고하지 않았다면 요압의 말처럼 백성들의 민심이 다윗에게서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이런 요압의 냉정한 말에 분별력을 찾아 성문에 나가 앉음으로 왕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다윗은 위기를 넘기고 왕위를 되찾았을 때,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사람이 잃었던 권리를 되찾으면 제일 먼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을 찾아 보복부터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에게 악을 행한 자에게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먼저 유다 지파를 용서합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은 다윗에게 받은 바 은혜를 기억했고 다윗을 다시 왕으로 모시고자 했습니다(9∼15절).
반란의 주체세력이었던 유다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들을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있었으나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용서했습니다. 다윗은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장으로 세웠고(13절), 그 결과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이 일제히 다윗에게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저주하고 도망 중이던 시므이도 용서했습니다(17∼23절).
여러분, 우리는 내게 잘못한 사람을 조건 없이 다윗처럼 너그럽게 용서하고 맞이할 수 있습니까?
[오늘의기도]
용서의 하나님, 충고를 받아들이기에 인색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주소서. 나를 미워한 자들까지도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관용하고 용서하는 믿음을 주소서. 아멘.
누가복음 22: 39∼53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눅 22: 46)
[묵상내용]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누는 대화입니다. 예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들으려는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은 주님을 향해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향해 열린 나의 마음은 고요하고 조용한 곳을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과 만나는 홀로 있음의 시간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지금까지 나에게 익숙했던 것과 거리를 두지 않고는 어려운 일입니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렇게 조용한 곳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과의 친밀한 만남을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겸손한 무릎으로 내딛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밤에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이 모두 다 잠든 그 시간에, 홀로 있음의 자리로 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침묵 중에 고요함 중에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시작한 주님의 기도는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남기지 않으시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주시는 생명을 건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시험을 이기고 주님을 따르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배우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41절).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알고 순복해야 합니다(42절). 성령께서 도우시는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43절). 그리고 힘을 다해 더욱 더 간절히 사랑으로 드리는 기도(44절)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지금, 예수님께서 어떻게 아버지와 대화하셨는지 배우기 위해 우리는 주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일어납시다. 우리에게 있는 슬픔과 절망 혹은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모든 장애를 뒤로 하고 일어나, 신실하신 아버지 앞에 겸손히 나아갑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길을 따라가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의기도]
예수님을 따라 일어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겸손과 순종, 돕는 은혜와 넘치는 사랑이 우리 안에 채워지게 하셔서 능히 세상의 시험을 이기며 승리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