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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 목 :   조지 오글 George E. Ogle, 1929-, 미북감리회
ㆍ날 짜 :  2008-03-02 Sun.  Prev Next ㆍ조회수 : 5,185 
조지 오글 George E. Ogle, 1929-, 미북감리회
  


[묵상내용]

여성노동자의 어머니라 불리는 조화순 목사에게 “목사님의 목회와 운동의 스승은 누구이십니까?”라고 질문할 때마다, 그녀는 거침없이 ‘오명걸 목사’라고 답합니다. 오명걸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조지 오글 선교사는 한국노동자의 친구입니다. 그는, 1955년 선교사로 한국을 방문하였다가 귀국한 뒤 1960년 결혼하고 나서 다시 한국으로 부임할 정도로 한국과의 인연이 참으로 긴 미국선교사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오글 선교사는 1962년부터 인천선교부에 부임하여, 인천 동구 화수동에 초가집 한 채를 구입하고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오글 선교사는 한국노동자의 지위향상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였습니다. 이후 1967년에는 인천을 근거지로 영등포, 부산, 대전, 영월, 함백탄광 등지에까지 활동무대를 넓혀갔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한국근로자의 실태와 교회의 과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라는 저서를 남겼고, 1973년에는 서울대학교 노사관계 전임강사, 감리교신학대학의 선교사학 교수, 노동조합 지도자 교육과정의 강사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목요기도회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발언하다가 결국은 강제추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오글 목사는 미국으로 추방된 뒤에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부인, 부모들과 함께 정부의 사건 조작을 알리고 이들의 석방을 호소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렸습니다.

오글 선교사는 한국노동자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며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가 오글 목사를 2002년 제5회 한국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하여 시상하였던 것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원했던 오글 목사는 자신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지금도 여전히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혁당 사건 등을 소재로 『20세기 한국의 이야기(How Long, O Lord-Stories of Twentieth Century Korea)』라는 역사소설을 최근 출간하였습니다.  

Posted by 차동신   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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