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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제 목 : |
윌리엄 쇼 William E. Shaw, 미북감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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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날 짜 : 2008-02-17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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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수 : 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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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내용]
서울 은평구 응암1동 85-41번지 ‘응암 어린이공원’에는 1956년 9월 22일 하나의 추모비가 옮겨져 놓였습니다. 비에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요한복음 15장 13절 말씀이 새겨져있으며, “쇼의 숭고한 한국 사랑과 거룩한 희생을 추모하여”라는 좌대석이 추가로 놓여있습니다. 또한 대전 목원대학 구내에는 쇼를 기념하기 위한 예배당도 건립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해밀턴 쇼(William. H. Shaw)를 기리기 위한 것인데, 한국인들은 왜 그토록 쇼를 기리고 있는 것일까요?
해밀턴 쇼는 윌리엄 쇼 선교사(William E. Shaw)의 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 진격 해군장교로 참전한 후, 미 군정청(美軍政廳) 소속으로 내한하여, 한국해군과 해병대 창설에 기여하였고, 제대 후 한국선교사를 목표로 하버드대학에서 연구하다가 6•25가 발발하자 해군 대위로 다시 입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는데, 서울 수복 진두지휘 중 1950년 9월 22일 녹번리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의 인연으로 외아들을 잃었던 그의 아버지 윌리엄 쇼는, 아들이 전사하자 그를 기념하기 위해 모금된 헌금으로 대전에 교회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 1955년 목회자들의 수련을 위하여 쉐파트(Shepard) 부인이 헌금한 6천 달러를 기초로 목자관을 건립, 관장으로 봉직하였습니다. 또한 감리교대전신학원(목원대) 창립 이사(1954-1960)로 참여하고, 신약학 교수로서 한국을 위한 헌신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한국인에게 크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 아데린 H. 쇼(Adeline Hamilton Shaw,1895-1971) 선교사는 숭덕여학교 교사 등으로 1960년까지 한국의 교육을 위해 일했습니다. 며느리 조니타 로빈슨 쇼(Juanita Robinson Shaw)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세브란스 병원에 사회사업실을 개설하였고, 큰손자 로빈슨은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사업과, 한국대학생을 위한 교류에 힘썼습니다. 어떠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쇼의 가족 누구 하나 각별한 사랑으로 한국을 보살피지 않은 분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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