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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제 목 : |
윌리엄 스크랜톤 William B. Scranton, 1856-1922, 미북감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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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날 짜 : 2008-01-27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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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수 : 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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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묵상내용]
윌리엄 스크랜톤 선교사는 바로 지난 주 살펴보았던 메리 스크랜톤 대부인의 아들입니다. 윌리엄 스크랜톤은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는 어머니와 함께 해외선교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1884년 미감리회의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어, 1885년 5월 3일 최초로 서울에 도착한 감리교 선교사가 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내한 즉시 스크랜톤은 북장로회 선교사 알렌이 경영하는 제중원에서 함께 의료사업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크랜톤의 열정은 단순한 의료사업으로는 만족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차차 전도자로서의 열망에 불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스크랜톤은 후에 자신의 초기 선교사업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복음을 위한 문을 여는 하나님의 열쇠로서 의술활동을 하였다. 나는 곧 이미 넓게 열려진 문의 자물쇠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의료사업을 떠나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이제 의료선교와 복음전도를 병행하며 동분서주하는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1885년 6월 20일, 그는 정동에 선교부 주택을 구입하고 9월 10일, 정동병원을 개원하였습니다. 이후 병원이름을 시병원으로 고치고 그 시설 규모를 확장하였습니다. 1887년이 되자, 스크랜톤은 다시 정동 시병원을 상동으로 옳겨 상동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1892년부터는 상동병원 내에 상동교회를 설립하고 담임목사가 되어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전신인 부인 전문병원(보구여관)의 설치를 제안하고, 또한 운영하면서 초창기 여성의료사업의 발전에 큰 기여했습니다.
스크랜톤을 의사에서 복음을 전하는 의료선교사로 이끄셨던 하나님께서는, 한국선교의 문을 활짝 여시기 위해 그의 지경을 다시 한 번 넓히셨습니다. 스크랜톤은 초기 미감리회 선교부의 회계를 거쳐, 미감리회 한국선교 전체를 지휘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서울 경기도 일원의 선교구역에서는 감리사로 크게 활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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