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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제 목 : |
헌트 Bruce F. Hunt, 한부선, 미북장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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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날 짜 : 2008-08-03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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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수 : 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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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내용]
황해도 재령에서 1906년부터 1939년까지 사역하다가 은퇴하고 미국으로 귀국했던 윌리엄 헌트(William. B. Hunt, 한위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재령의 여름성경학교는 초창기 1907년에 몇십 명에 불과했던 참가자들이 1930년을 전후해서 2천여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그와 더불어 재령 동부교회, 서부교회 등이 건축되었습니다. 큰 업적을 남겼던 윌리엄 헌트 선교사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바로 ‘한부선’ 선교사로 불리우는 그의 아들은 우리에게 더욱 더 깊은 감동을 줍니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한부선은 평양에서 출생하여 재령과 평양을 오가며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교육을 위해 귀국해서 프린스턴신학교에 다녔다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한국선교사로 내한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부선이 선교사로서 활동하던 때는 아버지의 시대보다도 더욱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던 한부선 선교사는 만주의 하얼빈 감옥에서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봉천노회에서 제명되는 일도 겪고, 계속하여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만주에서 옥에 갇히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사참배반대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였습니다. 결국 일제로부터의 해방 후, 신사참배의 반대자였던 한부선 선교사의 그 정신을 잇는 고려파 교회와 고려신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칼빈신학교와 복음병원에도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6·25 전쟁 후에 그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 산재한 고아들을 수도 없이 방문하며 도왔습니다. 헌트의 물질적 봉사는 결코 그가 부유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보잘것없는 시골의 작은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검소한 삶을 살면서도 아낌없이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한부선 선교사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였던 정신은 미북장로교 선교사들에게도 강하게 계승되었고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자 주기철 목사에게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시대의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던 한부선 선교사! 그가 보여준 결단력있는 행동 그리고 확고부동한 신념과 정신은 지금도 분명히 유효합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할 우리에게, 순종의 대상과 선택의 길은 항상 동일합니다. 신사참배강요가 지향하고 있었던 천황과 싸우며 하나님을 향해 철저히 순종하였던 한부선 선교사와 같이, 우리는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복음을 제시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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