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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제 목 : |
젠슨 Anders K. Jensen, 1897-1956, 미북감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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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날 짜 : 2008-03-09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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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수 : 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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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Anders K. Jensen, 1897-1956, 미북감리회
[묵상내용]
우리는 항상 더 큰 사랑을 열망합니다. 그러한 사랑에 대하여 성서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가르쳐줍니다. 한국을 위하여 갖은 고통을 당할 뿐만 아니라,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말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보여주었던 선교사가 있습니다. 바로 젠슨 선교사입니다. 앤더스 크리스 젠슨(Anders Kristian Jensen, 全善) 선교사는 1897년 3월 14일 덴마크 네스보그(Naesborg)에서 출생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 미육군으로 참전하면서 1818년 11월 11일 미국시민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27년 보스턴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감리교 국내선교부에서 일하다가 1927년 8월 한국선교사로 내한하였습니다.
젠슨 선교사는 약 7년 동안 인천지방에서 선교사업을 하다가 안식년 차 귀국했지만, 1년 후 다시 돌아와 여전히 수원•인천•서울 등지의 순회선교사로 시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국 사랑에는 고통이 따랐습니다. 그는 19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가, 8•15 광복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일하였지만, 1950년 6월 개성 출장 중에 6•25 전쟁까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D. N. 클락의 기록은 젠슨 선교사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말해줍니다. 젠슨은 북한군 포로가 되어, 평양에서 압록강(만포진)에 이르는 ‘죽음의 행렬’에 끼게 되었고, 3년이나 되는 억류생활을 하다가 1953년 5월 휴전으로 간신히 석방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젠슨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한국을 향한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1954년 10월 부인과 함께 또 다시 내한하여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교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들에 도움을 주면서 전후(戰後) 복구사업에 진력했고, 1955년에는 연세대학교 재단이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56년 11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미국고문단’ 일행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회담을 위해 수고하던 중, 젠슨은 심장마비로 별세했습니다. 그 깊고도 큰 사랑을 보여주었던 젠슨 선교사를 위해 한국교회는 정동교회 안에 젠슨관을 건축하고 그의 흉상과 추모글을 새겨 기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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